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걸까
오래된 표어가 있다.
'책은 마음의 양식'.
무슨 의미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책을 읽으면 좋다'는 의미다.
지식일 수도 있고, 감성일 수도 있고, 위로나 위안처럼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읽는 이에게 이로운 효과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왜 굳이 '양식'이라고 했을까. 왜 '마음'에 한정했을까.
'양식'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라고 적혀있다.
생각보다 의미심장한 표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의미를 확장해서 당시의 사회 상황과 분위기에 연결해보면 '책을 읽지 않으면 도태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성장하고 발전한다'라고 여겼던 게 아닌가 한다. 배워야 하는 시대, 급격한 경제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의식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표어가 아니었을까.
양식은 생존을 도울 뿐 아니라 먹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성장이 절실했던 시대에 어울리는 표어였던 거다.
세상에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지식과 배움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때 기회를 제공한 게 책이다. 수백 년이나 일부 특권 계층이 독점하듯 누렸던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기 시작한 거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 책에서 실마리를 발견한 사람들을 시작으로 책을 읽는 건 하나의 분위기가 됐다.
책 읽는 사회. 책을 읽는 분위기. 책을 읽는 사람은 앞서가는 사람, 지식인, 특별한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 미련한 사람,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생겨나기도 했다.
분위기란 무섭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 보이는' 분위기가 중첩되면서 책 읽기는 거대한 흐름을 이룬다. 그리고 출판계에 황금기가 열린다. 매년 밀리언셀러가 수십 권이나 탄생하는 시대가 온 거다.
시간이 흘렀다.
인터넷의 시대가 오고,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했다.
여전히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 있지만 비중은 줄었다. 더 재밌고, 더 신나고, 더 쉽고, 더 유용한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대작이 중심을 잡아주고 유용한 지식과 처세, 자기 계발을 돕는 책들이 곁가지처럼 세상에 나오던 출판 흐름도 역전됐다. 따뜻함, 예쁨, 귀여움을 기본으로 해서 조금 더 쉽고 친근하며 유용한 내용을 담은 책이 주류가 된 거다.
지역 서점은 줄었다. 대형 서점은 오히려 지점을 늘렸다. 온라인 서점들이 생겨나고, 지역 서점은 계속 줄어갔다. 이런저런 대책, 정책들이 제안되고 실행됐다. 그리고 지금. 2020년 보이는 그대로의 일들이 벌어지는 중이다.
'양식'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양식이란 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먹을거리라고 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양식 이상을 먹으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여러 변화가 있을 텐데 그중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성장'이다. 한창 클 성장기에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충분히 잘 자란다는 걸 우리는 안다. 결핍이 있으면 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장을 위한 충분한 양식을 먹어왔을까.
마음의 양식 역시 무언가를 자라게 했을 것이다. 양식이란 건 먹으면 자라게 하니까.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들, 규제하고 제안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이끌려는 사람들은 세상과 사람들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실행했다. 그중 사회적으로 강제력을 갖는 약속 '법과 제도'가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더 나은 세상일 거라 기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제도 역시 불필요하게 많아지면 오히려 제약이 되기도 한다. 성숙한 사람들에게 성숙해지기 이전 상태의 사람들에게 하듯 제도를 만들어 규제하면 오히려 싫어지고 불편해지고 꺼려하게 되는 거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마음의 양식을 오래, 꾸준히, 충분히 먹은 사람들이 자라고 성장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2014년 11월 강화 도서정가제가 시행됐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하나의 화두다. 강화 도서정가제는 제도 그 자체보다 제도에 깔린 전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싼 맛에, 높은 할인에 혹해서 책을 사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장했다. 마음의 양식이 쌓이면서 안목이 생기고, 책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취향과 주관도 형성했다. 그렇게 성장할 수 있던 과정에 가치를 두었기에 다양한 이유로 할인을 규제하는 형태로 발현된 강화 정가제가 아쉬웠던 거다.
최근에야 알지 못한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출판사가 할인율을 고려해 정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으니까.(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정책이 그렇지만 도서정가제는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인생 선배들이 후배들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장 성공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를 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도 싼 맛에 속고, 예쁜 표지에 혹하고, 유명한 누군가의 추천, 사은품이라는 미끼에 속는 씁쓸한 경험을 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주려는 듯이 말이다. 게다가 거기엔 대의명분도 있다. 작은 책방과 소규모 출판사를 지킨다는 명분들.
이 모든 게 독자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만 같다고 느끼는 게 나뿐일까. 마음의 양식을 먹은 만큼 자라고 성장할 수 있을 텐데, 실패나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을 텐데, 제도나 법이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는 동네책방의 가치에 공감하며 좋은 책이 꾸준히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하는 출판사를 마음에 품고 있을 텐데 그런 가능성과 존재들은 더 미더운 모양이다.
도서정가제의 성패를 단순하게 평가하고, 한쪽 목소리에 휩쓸려 간단히 없애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저지되어야 하고, 더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주장을 내세우는데 급급해서 시야를 좁히고, 입지를 줄이는 발언을 하는 것도 무모하다. 일부에서 도서정가제 개악을 반대한다며 내놓는 성명, 근거, 주장이 그렇다는 얘기다.
또 누군가는 입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내도 힘에 부칠 시기에 불협화음을 낸다고 혼쭐을 내려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려고 한다. 화음이란 한 목소리가 아니라 잘 어울리는 다양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거라고 믿으니까.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근거가 정말 타당한지 살펴야 한다. 그 주장이 단순히 자신이 옳음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공감과 감정적 지지를 얻어내고자 하는 거라면 더 그렇다.
내가 책을 통해 쌓은 마음의 양식은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켰다. 사람은 자란다. 마음도 자란다. 이제 좀 함께 자라자. 잘하자처럼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