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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04. 2021

흔한 풍경이 드물어지는 나날들

취미에 진지한 편이라 시작된 일상, 라인드로잉

취미에 진지한 편이다. 보통의 취미가 가볍게 시간을 보내거나 쉬엄쉬엄 쉬어가며 하는 활동을 의미한다면 내게는 취미가 없는 거나 다름없다. 사소한 취미 활동을 시작하는 데도 제법 많은 걸 고려하다 보니 아무 때나 수월히 시작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준비에 들이는 노력이 커지는만큼 기대도 높아진다. 그렇게 해서 취미에 진지한 한 사람이 세상에 등장한다.


 스스로 오래도록 그림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표현이 적절한데, 뭔가를 '느낌 있게' 그리는 법을 모르기에 '거의 비슷해 보이게' 그리지 못하는 한 뭔가를 그려내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작을 하더라도 끝낼 자신이 없었기에, 색칠은 커녕 원근도 제대로 살려낼 자신이 없었기에 처음부터 포기해버린다는 쉬운 길을 택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았다. 가벼운 취미 하나 없는 무거운 사람으로.


 드로잉과 이어진 건 독서모임을 통해서였다. 드로잉과 독서모임이 어떤 연결고리로 이어질 수 있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사연은 이렇다.

 나 역시 자세한 사건의 배경은 잘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분에게 A5 사이즈의 크로키 북과 피그먼트 라이너를 선물 받는다. 배경을 추측하자면 그분이 아마 평소 드로잉에 관심이 있었는데 자기 말고도 드로잉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하고선 드로잉을 잘하는 어떤 분을 모셔서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 후 드로잉을 시작했더니 좋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원데이 클래스를 위해 샀던 재료 중 남아있던 한 세트가 우연히 나에게 건네진 거다. 그분은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을걸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연의 우연을 두고 필연이라고 하는 법이니 결국 우연은 우연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만 뭔가를 시작해보라며 받았다고 해서 바로 시작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크로키 북과 라이너 모두 한참이나 집안 어딘가에 방치되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우연한 변덕으로 책 표지를 그려볼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게 7개월쯤 후다. 2018년 11월, 처음으로 그리기를 마무리한다. 

표지 따라 그리기 시대

 그날 이후 며칠 동안 표지 따라 그리기 시대가 이어진다. 필립 로스 <에브리맨>, 로맹 가리 <레이디 L>로 이어지는 긴 지구 역사 속 짤막한 인류 역사 같은 시간이. 

 처음에는 날짜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그린 날짜를 남겨두면 좋다는 조언을 듣고 날짜를 남기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그렸는지 장소도 더해서. 

 잘 그렸든 못 그렸든 그리면서 배우는 게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앞서 누군가가 선으로 그려낸 걸 따라 그리기가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보다 쉽다는 걸 알았다. 사진 속 현실 이미지를 스케치북에 옮기려면 그리려는 선을 떠올려야 한다. 그러나 처음 뭔가를 그리려는 사람에게는 이 선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형상이 그럴듯하게 완성되는지 감을 잡기도 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스케치북 속 그림에 실망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슬럼프가 왔다. 표지 그리기 중단이다.

 

공주 첫 드로잉

2018년 12월에는 매주 공주를 다녀갔다.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고, 골목이나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한가롭게 고양이와 놀기도 하던 시절이다. 책 표지 그리기가 뭔가 잘 풀리지 않아서 답답하던 때 그리고 싶은 욕심이 나는 공간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도전해봤다. 결과는 드로잉 속 고양이 몰골이 말해주는 것처럼 엉망이다. 왜 하필 이런 걸 그리겠다고 해서 이렇게 좌절해야 하나 싶다. 그래도 꿋꿋이 마무리는 했는데, 그 이유는 무슨 드로잉이든 끝마치기만 하면 어떤 의미에서든 나름의 멋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문적이거나 뛰어나지는 않아도 지금까지 계속 그릴 수 있는 이유는 나름의 멋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름의 멋이 이렇게 중요하다.

 

찾았다, 이녀석

 커피가 맛있는 반죽동 247에 갔을 때다. 유리에 담긴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이걸 그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그렸다. 최대한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려고 애쓰면서. 그 결과는 놀라웠다. 현실 이미지와 전혀 달라서. 먼저 유리잔 모양이 달랐다. 원래 유리잔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았는데 반대가 됐다. 대신 얼음은 잘 살려보려고 했다. 땀을 흘리는 잔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그려 넣고, 음영을 위한 선도 이리저리 그어봤다. 

 공주와 서울을 오갈 때 가장 자주 이용했던 숙소 봉황재 창호지 문은 왠지 그리고 싶어 지게 생겼다. 그래서 시도했는데, 이건 실패라고 밖엔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이어서 그린 보도블록은 마음에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반복되는 패턴으로 된 걸 그리기 좋아하는구나. 하고 

마지막 표지 드로잉

그리고, 마지막 표지 드로잉을 끝냈다. 이후로 오늘까지 한 번도 표지를 그리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데 진지한 취미로 삼기에는 부족해서였을 거다. 나중에 다른 공간들을 그리며 느낀 바에 의하면 말이다.


2018년 7월 여행으로는 처음 찾은 공주 원도심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원도심을 관통하며 흐르는 제민천을 걷다 발견한 집이 재밌다 싶어 찍어둔 사진이 있다. 한옥 지붕에 대문이라 하기엔 조금 작은 크기의 나무 문, 거기에 붙은 디지털 도어록. 하나하나 뜯어보면 부조화지만 왠지 자연스러웠다. 마치 백제 고도라고 하지만 고도를 상징하는 유물이나 유적이 거의 없고, 1930년까지 충청 지역의 경제, 행정 중심지였다고 하지만 그때의 흔적 찾기가 쉽지 않은 공주를 닮은 모습이다. 그만큼 낡고 오래됐지만 여전히 쓸모 있다는 점까지. 

 그렇게 찍어둔 사진이 공주 원도심에 살기 시작한 2019년 1월 처음으로 그린 드로잉이 됐다. 

 

나는 고집스러운 편이다. 고집을 부리는 부분에서는 조언이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뻣뻣하다. 하지만 필요하다 하는 부분은 쉽게 받아들인다. 그 받아들임의 결과 처음으로 모든 요소가 들어간 드로잉이 완성됐다. 날짜와, 위치와, 그림의 번호까지. 

 마음에 쏙 드는 드로잉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결과물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이 집 대문은 여전히 제민천을 마주 보고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한 집들이 여럿 헐렸고, 그 자리에는 한옥이, 카페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집에 누가 사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제법 오래 자리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정도는 안다. 


 누군가는 낡고 오래된 집이 헐리고 새집이 생기는 걸 반길 수도 있고, 쓸모없는 주택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가는 카페가 생기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변화들을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울림이나 뒤섞임이라는 건 본질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덧붙여지고 섞여야 가치를 유지한다고 본다. 무형의 가치나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 유형의 것, 그것이 건물이거나 소품이거나 사람이거나 우리가 만나고 만지고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걸 필요로 한다. 


 공주에 가가책방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부분이 경험과 기억이 담긴 '무엇'을 담아내는 일이다. 덕분에 책방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비도 아낄 수 있었고, 자신의 물건과 우연히 만나는 손님과의 인연도 생겼다. 온라인과 휴대 통신의 발전은 거리와 매개의 제약을 상당 부분 없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며 우리가 느끼듯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한 연결이나 정보의 교환, 소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더 깊이 이어지기를 원하고 더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소도시에 사는 나도 그렇다. 더 이어지고,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기록하기를 계속해나가는 거다. 


 이미 공주 원도심에서 사라진 공간들을 드로잉으로 남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가 있다. 서너 곳을 그리다 멈춘 게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새해, 새로운 다짐, 새로운 시작, 새로운 연결을 시작하기 좋은 이맘때, 멈췄던 작업을 다시 움직이는 것도 좋겠다.


 1년 전에는 흔하던 풍경이 보기 힘든 요즘이다. 사람이 모이고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풍경이 오히려 생경한 시대다. 2018년 처음 공주를 찾았을 때 흔하게 볼 수 있던 건물과 공간의 풍경을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흔한 풍경이 드물어지는 나날 속 흔한 풍경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습만으로 이미 충분하고 넘치니 말이다.

부서지는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이 흔해지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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