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Feb 21. 2021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좋다

뭔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의외의 이미지가 있다

공주 원도심에는 전국에서도 독특하다고 손꼽을만한 곳이 있다. 그중 하나가 무척 친절한 할머니 사장님이 운영하는 수제 돈가스집이다. 이름조차 친절한 이 식당 이름은 '여러분 고맙습니다'다. 


 이 식당이 최근 간판을 새로 한 모양이다. 친절한 이웃이 보내준 사진을 보며 또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간판을 새로 했음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식당 이름은 없고, 대표 메뉴 네 가지와 그 가격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간판에 메뉴판을 적어두는 식당이 있는 도시, 그곳이 바로 공주다.


 오랜 시간 낡은 채로 쓰던 간판을 새로 한 이유를 추측해봤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가 가격이 조정됐기 때문이지 싶다. 돌이켜보면 제공되는 메뉴의 구성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다. 오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달까. 궁금하면 찾아봐야 하는 편이라 얼마나 오른 건지 비교해보기 위해 지도 검색을 해봤다. 옛날 사람 같은 말이지만 요즘 지도를 검색해보면 매장 사진이나 메뉴, 가격을 올려둔 이미지가 있어 통합 검색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미지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지도 검색 결과에 대표 메뉴 가격이 적혀있는데 그 가격은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든 쉽게 들켜버리는 도시, 그곳이 바로 공주다.


 아무튼, 이 친절한 식당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메뉴나 가격의 변동에 있지 않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식당 사장님과 우연히 만났던 지난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늦은 봄이었는데 공기가 괜찮고, 컨디션이 좋은 날을 잡아 몇 번인가 아침 산책으로 제민천을 걷곤 했다. 

 그 첫날 멀리서도 누군지 식별 가능한 인물,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장님을 봤다.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저기 오는 분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장님이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내는 의심스러워했다. 그렇게 멀리서 알아볼 수 있을까를 의심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래서 사장님 특유의 모자와 유니폼이 있어서 알아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설명을 하는 동안 작은 다리를 건너 마주 걸었기에 우리 사이의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멀리서도 확실했지만 가까워지니 더 확실해졌다. 그분이 오셨다. 그런데 그분은 혼자가 아니었다. 강아지가 둘 동행하고 있었다. 만약 아침 산책 중에 누군가와 마주치기만 했다면 이렇게 인상 깊게 느끼지는 않았을 거다. 그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다음에 일어난 기이한 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강아지들이 무척 나이가 많다고 했다. 보통 반려견을 산책시키기 위해 제민천을 걷는 사람은 있어도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보기에도 나이 들어 보였는데, 유모차에 올라 세상에 별로 관심 없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짓는 강아지의 얼굴은 무척 나른했다. 그런데 낯선 사람을 봤기 때문일까, 갑자기 유모차에서 내린 강아지가 물구나무를 서는 묘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법 잘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창때의 기량을 완전히 잃지 않은 반려견. 

 여러분 고맙습니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건 늘 몇 번이나 물구나무를 서서 앞으로 걸음을 옮기던 작고 하얀 반려견의 모습이다. 


 이런 소소하고 발견하기 힘든 사건을 마주하고, 그 사건이 어떤 공간이나 사람을 떠올릴 때 반영될 수 있는 건 도심이 작고, 좁고, 적기 때문이다. 가격이 바뀐 간판 하나로 이 정도 얘기를 늘어놓게 되는 도시, 그곳이 바로 공주다.


 혹시, 황태 해장국을 좋아한다면, 우연히든 일부러든 공주 원도심을 찾아왔다면, 모험하는 셈 치고 여러분 고맙습니다에 들러보기를. 친절한 사장님이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해줄 거다.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는데 의자가 무척 따끈했던 기억이 난다.

 

연춘당한의원 뒷집

사실 오늘 얘기하려던 공간은 여기다. 연춘당 한의원이라는 유명한 한의원 뒤에 있는 건물과 공주 원도심에서 유일하게 기능하고 있는, 존재 역시 유일할 나무 전봇대가 주인공이다. 전선은 이 건물 맞은편에 있는 공주읍사무소 건물만큼이나 오래됐다고 한다. 얼마나 오래됐냐 하면, 100년이 조금 넘을 만큼. 100년이면 나무가 아니라 강철 전봇대라고 해도 견디지 못하고 삭아버렸을 것 같은데, 정말 어떻게 처리하고 관리를 했는지 놀랍기만 하다. 

 전봇대는 걸려있는 선들과 안내판으로 봐서 통신, 전화국 소유로 보이는데 참고로 연춘당 한의원 건너편에 우체국이 있는데 1890년대 최초 유선 통신이 개통된 곳이 그곳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 전봇대가 여기 있었을지도 모른다. 130년. 까마득한 시간이다. 


 전봇대 뒤에 있는 건물은 처음에는 뒤주 같은 거라고 생각해서 벼 저장고라고 적었는데 보통의 일본식 목조주택이지 싶다. 이 건물 옆에 주차장이 있는데 원래는 그 자리에도 비슷한 연대의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건물에 화재가 나서 불타자 건물을 헐고 주차장을 만들었다고. 그 화재의 흔적이 건물 한쪽 지붕에 남아 있다. 그때 모두 불탔더라면, 이 집도, 전봇대도 볼 수 없었을 테니 나에게는 정말 다행한 일이랄까.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많은 걸 알게 된다. 앞서 얘기한 친절한 사장님과 그의 반려견의 이야기도 그렇고, 연춘당 한의원 원장님이 헌사한 노인회관 건물과 그 건물의 운영에 쓰라며 토지를 기증했다는 일화도 안다. 의아한 건 그 노인회관이 상당히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는 점인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팔순, 구순 노인이 아니라 환갑 노인분들 정도가 이용했을 테니 납득할만하다. 그 연석에 기록된 '원장님'이 지금의 원장님인지는 알 수 없지만(아닐 확률이 높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도시, 그곳이 바로 공주임을 알 수는 있다. 


 다른 도시에서 찾아온 분들이나 지인들에게 꼭 보여주는 게 이 전봇대다. 한 때 가장 번화했을 거리, 중심가, 지금은 몹시 조용하고 쓸쓸하기도 한 그 풍경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좋아서. 나무 전봇대를 지나 이어지는 골목은 100년 전까지는 극장과 유흥 시설이 밀집된 구간으로 이어지는 길이라서 마치 과거로 이어지는 시간의 통로를 걷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한다. 물론, 지금은 예전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어느 집 마당 한편에 남은 오래된 향나무와 지금 봐도 기묘한 형태를 하고 있는 방치된 집의 깨지지 않은 창고 유리가 인상적일 뿐이지만 말이다.


 공주에 와서 부쩍 그런 경험이 늘었다.

뭔가를 생각할 때, 그것이 누군가든, 어딘가든 뭔가를 생각할 때 뻔하게 떠올릴 법한 어떤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생생하고 확실하게 살아있는 경험이 먼저 떠오르는 경험이다. 남의 도시, 멀고 낯선 도시가 아니라 가깝고 친근하면서도 애착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경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이고 쌓여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기억은 100년 넘은 나무 전봇대처럼 세월에 맞설 만큼 견고하지 못하다. 그래서 기억을 보조할 기록이 필요하고, 기록을 지지할 이미지가 필요한 거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조금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더 생생하고, 확고하게 기억하고 느끼기 위한, 다르게 말하면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이 작업의 목적은 다르게 말할 것도 없이 더 많이 알리고, 더 알려지게 하는 것이고,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기억도 경험도 풍부해질 여지가 커지는 것이니 내게는 더없이 좋은 게 된다. 우연히 전해받은 간판 사진 하나 덕분에 또 하나의 조각을 채울 수 있었다. 이 모든 걸 다행스럽게 여기며,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을 모르면 기억하기가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