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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20. 2021

이름을 모르면 기억하기가 어렵다.

혹시라도 그림 속 물건의 이름을 아는 분 없나요

오래전 유행하던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그대의 이름도 성도 나 필요 없소"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흥겨운 비트의 힙합!이다. 

 뭔가 멋져 보이고 싶은 X-세대의 허세 섞인 영혼의 향기가 풍긴달까.


 공주 원도심에 책방을 준비하던 때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게 뭔가 싶을 수도 있는데, 직접, 내 손으로, 심지어 주워오거나 받거나 버리려던 것을 모아서 만들다 보니 그 부품들을 잇거나 가공하기 위한 연장 혹은 물건들이 여럿 필요해졌다. 그러나 그 영역에서 일하거나 지내본 경험이 없다면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라 이름을 알아내는 게 정말 힘들었다. 


 아는 단어에 손을 들어보자.

1. 목다보. 

2. 토글스위치

3. 토우 앙카

4. 번데기 너트

5. 전선 애자


목다보는 목재 연결에 쓰는 대체로 원기둥 형태를 하고 있는 나무 조각이다.

토글스위치는 딸깍 하는 스위치 작동감이 확실한 약간 빈티지한 느낌의 스위치고, 토우 앙카는 요즘 흔히 쓰는 석고보드에 선반 등을 설치할 때 더 강한 결속을 시키기 위해 쓰는 나사못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번데기 너트는 볼트와 한 쌍으로 쓰는데 목재를 연결할 때 목재 한쪽에는 구멍을 뚫고 너트를 박아 넣고 다른 쪽에는 구멍만 뚫어서 볼트를 끼우는 식으로 많이 쓴다. DIY로 목재 가구를 조립해봤다면 목다보나 번데기 너트를 본 적 있을 거다. 

 전선 애자는 정말 아는 사람이 드물 텐데, 한옥 천정을 보면 전선이 지나는 자리에 흰색 기둥 같은 게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한옥이 화재에 취약하다 보니 합선 등을 방지하기 위해 전선을 띄우는 데 쓰는 게 아닐까 싶은 부품이 바로 애자다.


 이 부품들을 사기 위해 얼마나 검색을 했는지 모른다. '그럴듯한' 이름을 검색해서 한참을 뒤져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일이 흔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정말 다행이긴 한데, 또 한동안 쓰지 않고 지내다 보면 다시 잊힐 게 뻔해서 서글프기도 하다.


 공주 원도심 골목을 자주 걷는다. 그러다 눈에 띄는 독특하거나 그리고 싶거나 기억해두고 싶은 걸 사진으로 남기곤 한다. 한 때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뛰어놀았겠지만 지금은 전교생이 80명 남짓인 봉황초등학교 옆 골목을 걸을 때 발견한 게 두 가지 있다. 

 

함석지붕 교차점에 지붕을 마감하는 데 쓴 부품

하나는 이거다. 함석지붕 집이었는데,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지붕 마감이 아니라 복잡하고 섬세한 무늬가 들어간 데다 모양까지 독특한 부품이 거기 있었다. 지붕이 얕아서 더 눈에 띄었는데, 이런 모양의 마감 부품이 세 군데에 있는데 그 모양이 다 조금씩 달랐다. 마치 석탑을 쌓아 올리듯 위태로워 보이지만 균형 잡힌 부품이 특히 인상 깊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름을 모른다.


 도대체 이 부품의 이름이 뭘까. 여전히 지날 때마다 궁금하다. 용도대로 함석지붕 마감이라고 부르고 다니는데, 꼭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줬으면 싶다. 

 오래전 이 지붕을 시공했을 사람이 누구였을지 궁금해진다. 그분은 왜, 굳이 이렇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감재를 썼을까. 아니면 그때 당시에는 이런 마감재가 흔해서 어느 집에나 쓰던 걸까. 

 잊고 지내다 다시 눈 앞에 마주하고 보니 정말 궁금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집의 지붕이 개량되어 사라져 버리면 영영 알지 못하고, 이름까지 모르니 기억에서도 금세 지워지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샘솟는다.


 이름을 알고 싶다. 전화번호야 어떻든, 이름을 알고 오래 기억해두었다가 다른 궁금해하는 이에게 그 이름을 전하고 싶다. 그렇게 이어지고 전해져서 오래 남을 수 있었으면.


교회였던 건물 입구

교회라고 적었지만 간판만 남아있을 뿐 교회였던 건물의 입구다. 화려한 문양의 나무 문이 현관문 역할을 하는 게 독특해서 찍고 그렸다. 왼쪽에 그려보려고 애쓴 흔적이 있는 식물처럼 보이는(봐줬으면) 건 동백이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 내내 무성한 담쟁이 잎에 덮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이 떠나고,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찾았을 신도 떠났을 공간이지만 여전히 교회 이름이 새겨진 간판이 남아있기에 기억하게 된다. 누구도 돌보지 않고, 들르지 않아도 이 곳은 간판이 남아있는 한 교회다. 하지만 이름이 남겨져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게 이 공간에게 축복인지 아니면 슬픔 일지 판단하기 어렵다. 화려할수록 되색 된 영광은 더 깊은 씁쓸함을 남기는 거니까.


 이 공간이 품었을 희망, 이 공간을 찾던 이들이 바라던 소망은 다 이루어졌을까. 

오늘따라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자꾸 솟는다.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알았더라면 이름을 부르지 이렇게 알려고 하며 안타까워하지 않았을 텐데.


 공주 원도심에는 기억하고 싶은 곳이 많다. 지금도 꾸준히, 조금씩 변하고 사라지고 있기에 더욱 간절해지는 기억의 바람. 아직 모르는 공간들과 만나고, 아직 만나지 못한 이름들을 사진 옆에 적어두고 싶다. 


 천천히 골목을 걸으며, 오래 곱씹을 이름들을 지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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