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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18. 2021

한 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다.

아직 남아있을 때 지켜내야만 한다.

봉황재 다음으로 그린 몇 개의 드로잉은 실패였다. 같은 대상에 다시 도전했지만 한 번 더 실패했을 뿐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리기를 포기하거나 그만두지는 않았다. 배운 적 없고, 서툴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가 많고, 실수 역시 흔한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신 실패를 없던 것으로 하지 않고 가능한 방법 혹은 사소한 깨달음을 남기려고 노력해봤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비율이 좋은 대상을 그리는 건 어렵다'는 거다. 기막힌 균형을 자랑하는 석탑이나 완벽한 균형을 보이는 대상들은 조금만 서툴러도 몹시 이상하게 일그러져 보이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실패한 석탑모형 드로잉

왼쪽은 아래에서 시작해서 위로 그려 올라갔다. 그랬더니 종이 위쪽에 공간이 부족해서 상단부를 찌그려 뜨려야 했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케이크 혹은 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생크림 케이크처럼 보이는 이유가 그거다. 오른쪽은 위에서 아래로 그려 내려왔다. 그랬더니 비교적 넉넉하게 각 층을 그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했다. 메모해 둔 것처럼 위에서 그려 내려오는 방식이 유리하거나 아래에서 그려 올라가는 방식이 수월하거나 하는 깨달음만 남았는데, 결론은 탑은 그리지 말자는 거였다. 탑이 균형을 일그러뜨리면 몹시 이상해지는 대상 중 하나가 되어 방법을 알게 될 때까지는 무기한 그리기를 연기한 거다. 누군가는 도망쳤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다 즐겁고, 재밌자고 하는 거다. 자꾸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 재밌기 힘들다. 다들 알다시피.

 


 또 한 번 실패한 결과물이다. 반죽동 247 커피잔과 티코스터인데 실제 커피잔은 위아래 둘레가 같고 그림처럼 각진 모양이 아니라 더 둥글고 얇게 생겼다. 티코스터 역시 더 도톰하고 봉재선이 많다. 빙글빙글 돌아서 나선형을 이룬다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지. 또 한 번 교훈을 얻는데 둥근 잔 역시 균형감, 비율에 맞게 그려야 안정감과 편안함을 준다는 거다. 위태로워 보이거나 날카로워 보이는 건 실제로 그렇게 생긴 게 아니라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앞서도 적었듯 연이은 실패가 포기하게 하거나 그만두게 만들지는 않았다. 모르던 무언가를 알게 되는 과정이 더 즐거웠고, 때때로 실수처럼 괜찮은 드로잉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패를 곱씹어야 하는 건 실패를 맛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같은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함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만약 그 사실을 망각하고 실패 속에서 오래 허우적거리게 되면 좋을 게 없다.  한 번의 불운이 평생의 불행이 되는 일도 보통 그렇게 시작되니까 말이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공주에 와서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왜 오래된 건물 보기가 힘든 걸까?'다. 나중에 그 비밀이 풀렸는데 어른들 말에 따르면 공주는 신관동이라고 하는 신도심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원도심에서 계속해서 재생과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넓지 않은 분지 지형의 한계로 도심이 외곽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부수고 새로 짓기를 거듭해왔다는 거다. 수령이 많은 거목을 보기 힘든 이유도 같다. 나무가 자라서 자리를 차지하면 집을 짓거나 길을 내는데 걸림돌이 되었기에 잘라버렸다는 얘기다. 덕분에 조금 오래된 나무, 큰 나무들은 대부분 학교 부지 안에 있다.

  

 민가의 사정은 그렇다고 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가에 속해있었을 건물들을 찾아보기 힘든 건 이해하기 어렵다. 3. 1 운동 당시 천안에서 잡힌 독립투사들이 끌려와 갇힌 곳이 공주 감옥이었다고 하는데, 그때만 해도 공주가 더 크고 번화한 도시였단다. 지금으로 하면 도청 소재지에 법원과 형무소까지 있던 지역이라는 건데,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이라고는 중동성당, 제일교회, 지금은 역사 영상관으로 쓰는 읍사무소. 이렇게 세 개뿐이다.


 또 하나가 더 있기는 하다. 바로 아카데미극장이라고 하는 오래된 극장 건물이다. 이 건물을 앞서 언급하지 않았던 건 곧 철거될 거라는,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소식을 거듭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아카데미극장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운 상태다. 철거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보호나 보존 조치 없이 방치하는 시간을 견딜 건물은 없기 때문이다.


 이 드로잉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다만 조금 미화된 부분들이 있는데, 그림보다 더 허름하고, 많이 갈라져있으며,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다. 외지에서 누군가 찾아와서 원도심을 둘러보려 하면 한 때 무슨 드라마에도 등장했었다는 '민나 도로보 데쓰'의 주인공 공주 갑부 김갑순을 언급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하지만 그가 지었다는 아카데미 극장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20년 넘게 방치된 흉물이자, 사라져 버리면 시원할 묵은 원한 같다.


 멋지거나 의미 있는 건물 혹은 공간을 발견해서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남기는 건 수십 번 실패해도 괜찮다. 사진이 남아 있는 한 다시 그릴 수 있고, 그리다 보면 실력도 자연히 조금씩이나마 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건물은 한 번 무너뜨리면 돌이킬 수 없다.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면적, 구조로 다시 지어도 마찬가지다.


 외지에서 불쑥 들어온 나는 그렇게 얘기하고 다닌다. 한 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된다고. 이 공간이 아직 극장이었을 때, 아직 문예회관이었을 때, 그 안에서 혹은 그 주변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 기억도 공간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고 말이다.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려둔 공간 중 여럿이 무너지거나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어린 시절의 기억, 고향에서의 추억을 갖고 돌아올 이들이 자신을 발견할 단서도 함께 사라져 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영원히 변하지 말라는 이야기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런 얘기, 그런 의도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어느 신도시의 모습처럼 새것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넓고 쾌적한 환경으로 바꾸는 게 최선은 아니라는 걸 한 번 더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거다.


 사람들은 자꾸만 보기 드문 풍경을 찾아다닌다. 나 역시 보기 드물게 조용하고 한적해서 쉴만하다 여겼던 공주에 잠시 머물려다 이렇게 눌러앉은 경우다 보니 그런 사람들의 존재와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아무리 크고 멋진 건물을 지어도, 아무리 넓고 편리한 도로를 만들어도 머물고자 하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도 없다.


 공주 원도심에는 제민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있다. 그 하천은 요즘 많이 하듯 콘크리트 바닥에 중간에 돌을 얹고, 약간의 굵은 모래를 뿌려두는 깔끔한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여기저기 풀이 자라고, 돌 틈에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며, 곳곳에 수초가 뿌리를 내린 자연하천의 모습에 가깝다. 덕분에 새도, 물고기도, 놀랍게도 수달도 제민천에 머무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한적하고 한산하며 조금 불편하더라도 매력적인 골목이 많아서 공주가 마음에 들었기에 여기에 살고 있다. 언젠가 아카데미극장은 무너져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여전히 지켜내고 싶고,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려 한다.

 그리기를 한동안 쉬었다. 덕분에 실패하는 경험과도 멀어져 버렸다. 다시 실패하게 되더라도, 무언가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그 힘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다시 그리기를 시작해야겠다. 남아 있는 공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기억에 담아둘 수 있도록. 언제든 열고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메말라 사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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