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님들아, 오래오래 안녕하시오.
작다는 게 가깝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는 걸 공주에 살기 시작하며 실감한다. 서울에서는 작은 땅덩이에 높이 올려 지은 오피스텔에 수백 명이 살면서도 앞집 사람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공주에서의 일상은 그 반대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도 며칠, 몇 주쯤 오가며 마주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정도는 저절로 알게 된다. 반대로 사람들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 묻기도 한다. 한 때 교육도시로 하숙을 치던 경험이 흔해서 그런 건지 거리낌이나 어색함이 없다. 그렇게 무턱대로 거리를 좁혀 오는 게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더 다가오거나 파고드는 일 없이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 그게 공주다.
공주시는 세종시가 생기면서 토지 일부를 떼어주고도 여전히 서울보다 20% 이상 더 넓다. 이렇게 넓은 땅에 지금은 10만 남짓한 사람만 산다. 신도심이 생기고, 세종시가 생기고, 주변과 연계되는 도로 사정이 나아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공주를 떠났기 때문이다. 빈집이 늘고 빈 상가가 흔해졌다. 몇 년 전까지 공주는 졸업하면 떠나고 싶은 도시, 집 팔리면 떠나고 싶은 도시였던 셈이다.
만약 모두가 떠나기만 하는 도시였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없었을 거다. 운이 좋았다. 그런 도시로 돌아온 사람들과 이 도시가 좋아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이 도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들이었으니까. 그 사람들은 이방인의 눈높이에서 공주를 경험하게 했다. 먼저 와서 찾았지만 찾지 못한 맛을 직접 보여줬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공주를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자주 가서 먹고 이야기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렇게 오래오래 안녕하고 안녕하며 지낼 수 있다고 믿던 때가 있다.
세상에는 이별이 흔하다. 세상에 속한 공주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뜻하지 않은 이별이 흔히 찾아왔다. 녀석들이 으레 그렇듯 갑자기, 불쑥하고 찾아오는 통에 준비하지 못하고 황망한 마음으로 보내기 일쑤였다. 자주 가던 단골 식당이 갑자기 문을 닫았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아내는 지금도 그 식당 앞을 지날 때면 생각난다고 먹고 싶다고 슬프다고 한다. 슬픔에 의미가 여럿이겠지만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작은 도시에서 가깝다고 느끼며 자주 가던 어딘가의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건 얼굴 마주칠 일 없는 대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아픈 일이다.
올해 초, 여기저기서 이제 영업을 하지 않는다거나 그만 둘 예정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 이제 어디 가서 밥 먹지?’하며 걱정하던 때가 있다. 다행히 한 곳은 그 결정이 철회인지 유보됐지만 한 곳은 예정대로 문을 닫았다. 이제 충청남도에서 제일 맛있는 돈까스를 먹으려면 다른 도시를 찾아가야 한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을 두고 어른들은 종종 ‘밤사이 안녕’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정정한 노인이라 해도 어제 괜찮았다고 오늘도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냉정한 얘기다. 냉정하다 싶지만 참으로 옳은 말이다. 확실한 것도 영원한 것도 이 세상에는 없으니까.
작은 도시에 사는 동안은 종종 이렇게 기도하려고 한다. 밤사이, 하루 사이, 한 주 사이, 한 달 사이, 한 해 사이 모두가 안녕하기를. 작은 도시에서는 그만큼 자주 보고, 종종 마주치고, 흔히 소식을 듣게 되기에 오래오래 안녕하기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슬픈 안녕이 이제는 없기를 그렇게 기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