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 패배하는가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by 가가책방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이렇게 소리친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다만 파괴될 수 있을 뿐.


이 글을 쓰기 전에 중구난방 떠오르는 생각을 쓸어내면서 다른 날에 쓴 <노인과 바다> 리뷰를 다시 찾아보고, 다른 나라 사람이 쓴 글도 몇 개 읽어봤다. 누구는 마스터피스라고 극찬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구는 내다 버리라는 얘기들이 있었다. 저마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 파괴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들.


짧게 써보자.


인간은 언제 패배하는가.

이번에 떠올린 건, 자기 삶의 어떤 과정과 결과를 실패라고 생각하는 순간 패배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패배하는 사람은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고 결론 지었던 것이 아니라 반대로 패배하지 않는 인간들은 결코 자신이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나온 생각이다.


나는 말장난을 제법 좋아하지만 조롱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 자주 패배하고 수 없이 실패했으며 그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패배도 적지 않았으므로 누구의 실수, 누구의 실패를 비웃거나 심판할 자격도 능력도 생각도 마음도 없다. 그런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 그런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이 그 실패의 하나라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울 뿐.


헤밍웨이라는 인간을 잘 모를뿐더러 굳이 좋아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므로 이 글의 시작부터 지금, 마지막까지 언급하는 건 작품 속 노인임을 새삼 선언한다.

노인은 실상 패배한 것과 다름없는 지경에 처한다. 자신과 닮은 물고기를 사투 끝에 잡았으나 상어들에게 모조리 뺏기고 어구마저 잃어버린 채 간신히 숨만 붙어서 돌아오는 이가 승리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자신의 삶과 그 안의 선택들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긍정하겠다는 의미라고 본다. 자신의 삶이 의미를 잃었고 자신은 실패했고 마침내 패배했다는 의식에 젖기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가장 평화로웠던 날을 기억하며 잠드는. 그 잠이 마지막 잠이 되더라도 결코 후회로 기억되지 않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달콤한 조언이 아니라 고통과 실패까지도 부정하지 말라는 인내의 태도.

그 태도가 지금의 내게는 필요하다.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억지스럽게, 정신 승리라도 좋다.

나를 부정하는 일은 그 일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바로잡기 위해 부정할 필요가 없음에도 스스로를 부정하다 보면 타인도 나를 부정한다고 느끼기 쉽다. 바로잡으려는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고 조언하는 타인을 거절하게 된다. 거절하고 거부하며 느끼게 될 감정이란 누군가 혹은 모두가 잘못하고 있다는 자책 혹은 분노일 것이고 우리는 한층 더 패배에 가까워지게 된다.


이 시대는 그런 시대인가 싶다.

억지로라도 뻔뻔하더라도 당당해야 하는 시대. 결단코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패배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되는 시대. 사실 어느 시대라고 그렇지 않아도 됐을까마는, 지금 이 시대에 특별히 간절한 태도가 아닌가 한다.


패배하지 말자, 스스로라면 더욱더. 파괴당하지도 말자, 함부로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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