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tough.

타인은 지옥이다.

by 가가책방

사르트르는 <닫힌 방>에 이렇게 적었다.


"타인은 지옥이다."

닫힌 방/장 폴 사르트르_민음사


드라마 쓰는 박혜원 작가님 북토크에 다녀왔다. 때마침 찾아온 폭설 덕에 십여 분 늦게 도착해보니 십여 명이 먼저 와서 앉아 있다. 작가님은 어떤 질문들에 대한 대답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이미 시작한 상황이었으므로 수줍은 몸짓으로 상체를 슬쩍 굽히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가며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와 달리 준비된 대본이나 짜인 각본이 없기에 모든 시간, 오가는 이야기는 살아있었다. 한 시간 남짓의 길지 않은 시간, 내가 준비한 질문은 책 말미에 실린 <모수>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거였다.

'모수'는 머리를 모은다는 의미로 짤막한 극의 원고였는데, '외로움은 지옥이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극본의 마지막 장면이 비추는 건 솥 안에 든 머리 몇 개였다. 등장인물이 확실하게 가져간 머리는 두 개라서 왜 두 개가 아닌 몇 개로 적었는가를 물었다. 작가님은 등장인물이 머리를 모아 오기 전에도 다른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삶의 고통, 그 힘겨움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외로움이 그려낸 지옥도, 그 비극의 풍경 이후에 희망이 있기를 바랐다. 소설이 끝나고 난 이후처럼 드라마 역시 끝난 이후에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실현되었는지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라서 다만 소망할 뿐이었다.


'외로움은 지옥이다'라는 얘기와 어제 글을 쓰며 인용한 '지옥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에서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가 떠올랐다. 왜 타인은 지옥인가.


나와 완전히 무관한 사람들은 타인조차 아니다. 나를 언급하거나 염두에 두거나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은 무인(無人)이다. 없는 사람, 그들에게는 내가 없고 나에게는 그들이 없다. 그런 관계는 지옥이거나 천국일 수 없다. 사르트르의 타인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알고 있되 신뢰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야 한다. 잘못 알아 오해하고 잘 모르기에 의심하고 불신해야 한다. 그 후에야 비로소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제일 잘 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같이 살아봐서 아는데", "우리 아빠라서 혹은 엄마라서 모를 수가 없는데", "그 사람은 늘 그렇게 한다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아." 이런 말들이 무수히 떠돌다 그중 몇 개가 타인의 선택을 받는다. 지옥의 전조다.

사실 타인 지옥의 늪을 피해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인간적으로 판단하면 대부분 알아차릴 수 있을 법한 방법들이다. 예를 들면 오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오해를 해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물어보고 그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거다. 물어보는 데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타인이 지옥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렇게 용기를 내어 물어본 후에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옥과 맞닥뜨렸다고 해도 앓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감내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랐다고 성급하게 답하지만 사실은 알아차렸지만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지만 하지 않는 거다. 여러 이유가 있다. 자존심일 수도 있고 바빠서일 수도 있고 잠시 정신을 다른 데 쏟았을 수도 있고 서로의 타이밍이 어긋났을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타인은 지옥이다"는 말을 마치 운명처럼, 진리처럼 느끼게 되는 거다.


미워하는 게 아님에도 마치 몹시 미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지옥을 겪을 때가 있다.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는 게 아닌데도 타인 지옥은 왜 찾아오는 걸까.

내 상황, 내 경험, 내 생각대로 타인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때문이 크다. 배려했지만 오해와 불신을 거쳐 배려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일이 되고, 화해의 손길 삼아 던진 말이 열등감에 불을 붙여 화를 더 키우기도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오해를 발판 삼아 넘거나 뱉어내고, 마지막으로 자존심이 모든 걸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모른 체 하게 한다.

그렇게 타인과 만들어낸 무수한 지옥이 세상에 현현하는 거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늘 고민한다. 오래 고민하지만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잘못하고 있다고 느껴도 어디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지 못한다. 다만 기도한다. 진심을 볼 수 있도록, 진심을 전할 수 있도록 신중하고 상냥한 마음이 되기를. 사나운 말을 오래 내뱉어 온 습관 탓에 좀처럼 내밀지 못하는 상냥한 손길에 용기가 머물기를 바랄 뿐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말은 환상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내가 아닌 타인이 만든 지옥을 경험한다고 믿고 살지만 나조차 나를 잘 모르는 바에야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헐떡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므로.

다툼과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게 누구인지, 타인에게 묻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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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북토크를 어색해 하며 선물을 잔뜩 준비한 박작가님과 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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