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무사안일이라는 시한폭탄
회전교차로를 지날 때 종종 경적을 울린다. 가볍게 울릴 때도 있고 신경질적으로 울릴 때도 있고 분노를 담아 울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경적을 울리는 건 무섭기도 하고 아이 교육에도 좋지 않으니 그만두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럼에도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다시 경적을 울릴 것이다. 그것이 당장에 시끄럽고, 어떤 효과도 없어 보인다 해도 경적이란 '주의나 경계를 하도록 소리를 울리는 장치'니까 주의하도록 잘못을 인지하도록 하기 위해 경적을 울리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감당할 것이다.
공주 원도심에는 유난히 회전 교차로가 많다. 적절한 곳도 있고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곳도 있고 필요하지 않은 곳도 있는데 아무튼 많다. '아무튼 많다'라고 적은 건 그 숫자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전교차로를 드나드는 사람들 중 상당 수가 회전교차로 통행법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음을 경험하는 빈도가 잦기 때문에 느끼는 피로감에서다. 빨간불에 서고 초록불에 멈춘다만큼이나 당연하고 상식적이어야 하는 회전차량 우선 규칙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운전자를 자주 목격한다. 오히려 회전하는 차량에 경적을 울리거나 속도를 높여 위협하는 경우도 봤다. 한 번은 회전교차로에서 좌회전하는 차와 마주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습게도 회전하던 차가 진입하는 차량에게 우선 통행을 양보하기 위해 멈추는 경우도 종종 본다. 회전차량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뒤따르던 차가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행인데 몇 번의 사고를 이미 목격했고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고라고 해도 종종 사고 표시 마킹이 되어있는 걸 보면 빈번하게 사고가 일어난다고 생각해도 틀린 건 아닐 것이다.
방어 운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회전교차로에서는 진입이 예상되는 차량이 있을 때 특별히 더 서행하곤 한다. 예전에는 경적을 울리는 걸 스스로 금기시해서 무리하게 진입하거나 회전차량 우선을 지키지 않는 차를 만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곤 했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아직 아무런 문제도,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자칫 경적을 울려 내 기분이 상하거나 상대 운전자를 놀라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운전습관을 바꾼 계기는 블랙박스 사고 영상을 보게 되면서다. 회전교차로에서의 사고는 사실상 회전하는 차량이나 진입하는 차량이나 어느 한쪽이 100% 일 수 없다는 사례를 보고,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을 보고, 서로가 회전교차로 통행법을 조금만 더 지켰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무수한 사고들을 보며 혹시라도 정말 모르고 회전교차로에 진입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적을 듣고 멈추는 강제적인 과정을 통해서라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 거다.
습관적으로 진입하는 일방통행로의 역주행 차량도 경적의 대상이 된다. 몰라서 역주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가 일방통행인 걸 인지하고도 편의 혹은 습관대로 역주행을 하는 일이 소도시에는 흔하다. 일방통행이나 회전교차로 회전차량 우선은 잘 지켜질 때는 표시가 별로 안 나지만 지켜지지 않았을 때는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큰 일이다. 일방통행이라 그 방향으로는 차가 나올 리 없다고 믿고 길을 건너다 차에 치어 크게 다치는 일이 분명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고, 차와 차가 부딪히는 사고도 드물지는 않을 거다. 회전교차로 사고는 너무 흔해서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회전차량이 우선이니 진입하는 차가 설 것이라고 믿고 진행하다 사고가 나면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전방주시태만, 방어운전 미실시로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 가벼운 접촉사고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면과 측면이 강하게 충돌할 수도 있어서 조수석에 사람이 탔을 때나 뒷좌석에 아이가 타고 있거나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방어운전을 당연히 해야겠지만 처음부터 약속을 잘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이므로 규칙을 숙지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문제가 없으니 넘어가고, 시끄러운 게 싫으니 참고, 아이에게 신경질적인 부모 혹은 운전대만 잡으면 화를 내는 부모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 평화롭게 지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왜 경적을 울리는지, 이 상황이 어떤 위험을 안고 있고 그 상황에서 상대에게 주의하도록 경고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건 위법하지만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소란과 분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들인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뭘 그렇게까지 따지고 들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너는 한 번도 그러지 않고 살 수 있겠어?", "지금은 아무 문제도 없잖아.", "유난 떨지 마." 선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굳이 그렇게 할 게 있느냐며 별생각 없이 견제하는 말을 던지는 사소한 일이 사실은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은 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부끄러워한다. 실수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든 규칙을 어길 때면 보는 사람이 있거나 아니거나를 떠나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부끄러움은 규칙을 인지한 데서 오는 것이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생기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벌이는지 보고 있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잘 살아간다고 해서 그것이 유쾌하거나 즐겁거나 좋은 일은 아니다. 내일도 회전교차로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를 만난다면 나는 다시 경적을 울릴 것이다. 난장이가 작은 공을 쏘아 올리는 마음으로, 티 나지 않는, 가끔은 그런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하는, 그 과정을 참고, 견디고, 이겨낼 것이다. 모른척 지나친 일이 누군가에게 시한폭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무지하면 용감할 수도 있겠지만 무지하면 위험한 일이 더 많다. 괜히 아는 게 힘이고, 아는 걸 행하지 않으면 아는 게 아닌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