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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ug 14. 2023

느리지만 어딘가에서는 멈추게 된다

변화를 다 수용할 필요는 없다

 예전에도 그랬나 싶은데 최근의 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느리다. 

느리다고 하는 게 맞는지 느려지고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굳이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느리거나 느려진 건 분명하다. 이 느림은 조급해지는 마음을 제외하면 거의 공평하게 적용되어서 삶의 속도 자체를 늦추고 있다.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좋아진 건 나이를 체감하는 속도도 함께 느려졌다는 거다. 나이 들면 점점 빨라진다는 체감 속도가 현저히 느려짐으로써 유래 없는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달까. 농담이고.


 브런치에 생겼다는 변화 소식을 얼핏 들었다. 겉에서 보니 '이제 브런치로 수익을 낼 수 있다?'가 결론인 듯했는데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작가 플랫폼에서 시작해서 브런치북 프로젝트로 이어져 실제로 출간 작가들이 생겨나고 그중에서 몇몇은 제법 유명 작가가 된 것은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작가가 된 사람들은 이미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수익을 창출했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이제?'낼 수 있게 된 건 아니지 않을까. 브런치북 수상자보다 더 많은 작가들이 에디터의 선택을 받아 응원 대상이 되었다는 양적인 측면과 브런치북이라는 1년에 한 번 있는 기회보다 조금 더 여러 차례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 되려나.


 이렇게 브런치에 일어난 큰 변화에 대해 아는 척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거의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하는 게 옳다. 조금 더 정확히 적으면 그 변화에 별 관심이 없다. 브런치 스토리와 작가로서의 등단, 글을 쓰는 일과 돈을 버는 일을 같은 선상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모르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는 혹은 쓰려는 작가들 대부분은 '돈을 번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있을 거라 믿는다. 조금 덜 혼잡하고 조금 더 목적이 뚜렷한 플랫폼의 모습을 하고 있는 브런치의 탄생 배경, 작가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가치 있는 경험, 소중한 생각들을 소재의 도용과 표절의 위험으로 넘쳐나는 공개된 플랫폼에 적으면서 '이걸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바보 같은가. 이들에게 필요한 건 백지가 아니라 연결과 연결의 가능성이었을 것이고 그 연결의 결과로써 얻고자 하는 건 돈이 아닌 사람이었을 거라는 낭만주의자의 소망을 품어봐도 좋지 않겠는가.


 일요일 오후, 한산한 단골 카페에 아이와 앉아 공룡 모형으로 탑을 쌓았다. 여섯 마리를 가져왔기에 육단을 쌓아보려고 시도했다. 오단까지는 어떻게든 되는데 육단이 도무지 올라가지를 않는 거다. 여러 차례의 즐겁고 우스운 실패 뒤에 결국 둘로 나누어 쌓았는데 쌓고 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공통점이 생겨나 있었다. 한쪽은 입을 벌린 녀석들을, 다른 쪽은 입을 꾹 다문 녀석들을 모아둔 것인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입을 벌린 녀석들은 그 뾰족한 이빨들로 보아 육식이요, 다른 쪽은 초식들이다. 같은 공룡 여섯이 모였으나 다 같지가 않다. 브런치가 그렇다. 글을 쓴다는 같은 마음으로 모였으나 누구는 더 잘 나가고 누구는 아니다. 누구는 더 잘 쓰고 누구는 솜씨가 덜하다. 그러나 육식이든 초식이든 하나같이 공룡이듯 더 쓰든 덜 쓰든 브런치 안에서는 다 같은 작가다. 


 작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다만 쓸 일이다. 밖에서 들이닥치는 변화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피고 기록해 나갈 일이다. 변화를 다 수용할 필요도 없다.


 밤이 깊어진다고 시간이 느려지지 않는다. 이 밤이 그렇다.


어라, 익룡은 입을 다물고 있네. 그래도 고기는 먹었을 테니 수정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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