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100세가 넘어서도 정정하시던 큰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연세 많은 어른들은 '밤 사이 안녕'이라고 하는데 늘 여기저기 아프다고, 입으로는 죽겠다고 하면서도 가벼운 밭일에 부지런하던 모습이 큰할머니 생전 마지막 기억이 됐다. 어머니는 심란해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되었다고, 그리 알고 있으라고.
가깝거나 멀거나 눈으로 보고 듣는 누군가 어떠어떠한 이유와 사연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들은 거의 늘 나와 우리 삶을 더 강하고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 일, 사고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아 안도하면서 남일이기에 어렵지 않게 애도하고 잊어버렸다.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을 죽음도 생의 활기와 분주함에 밀려 간단히 멀어졌다. 죽음이 있기에 생이 도드라지는 실감. 타인의 죽음은 늘 그 정도에 그쳤다.
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그런 부분에서 타인의 죽음과 구분됐다. 조금 더 가까웠고 더 많은 연결이 있었기에 생을 실감하게 하기보다 이어질지 모르는 죽음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컸다. 말로는 삶과 죽음이 늘 공존한다고 하면서 먼 얘기처럼 여기던 죽음이 또렷해졌다.
오래전 어느 밤 기억이 난다. 지금 내 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던 아버지는 상갓집에 다녀와서 술에 취해 울었다. 자신보다 열몇 살 많은 집안 어른의 죽음에 우리 집안 남자들의 단명을 걱정하며 자기 삶을 불안해했다. 남겨질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과 세상을 떠나야 할 자신을 서러워하며 술기운에 울었다. 다른 기억은 희미해져도 그날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다. 그 기억을 생생하게 만드는 힘이 죽음의 무게라는 걸 이제야 안다. 다행히 나는 가깝거나 먼 죽음에 스스로와 가족을 염려하며 울지 않을 수 있었지만 큰할머니의 부고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실감한다. 내 삶이 조금 더 무거워진 기분이다.
무거운 기분에 반발하듯 떨리는 생이 남기는 기록이다. 누군가의 생이 멈춰도 생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