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숨에 배부른 사람은 없다

다만 든든한 한 숨은 있다

by 가가책방

숨만 쉬어도 배가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허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엄청나게 배고픈 건 아니고,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은 떠오르지 않지만 아무거나 먹고 싶지는 않은 기분일 때 특히 그렇다. 물론 배부르게 숨 쉬어 본 기억이 있어서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배가 부르려고 숨을 쉬는 사람이 어딨어"라며 핀잔해도 할 말이 없는 한심한 생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알지만, 그런 줄 알면서도 자꾸 미련이 남는 건 까마득한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다.

계절은 늦가을이나 겨울 초입이다. 그때는 날이면 날마다 해가 짧아진 건 생각하지 않고 들이며 산을 뛰어 다니며 노느라 어두워져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정확히는 돌아왔다가 아니라 불려왔다고 해야 한다. 어둡도록 우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는 북쪽으로 난 부엌 창문을 열고 우리를 불렀다.

"밥~ 먹어~~!!"

"밥 때가 되면 들어와야지~~!!"

꼭 누구라고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밥 먹으라는 소리만 내는데 용케 우리를 부르는 소리인 줄 알고서 정신을 차리는 거다. 뒤늦게 서두르는 척 부리나케 밥상 앞에 앉으려고 하면 손이며 발이 아직 흙투성이라 "얼른 씻고 와"하고 수돗가로 내보내셨다. 대충 손이며 발을 씻고 오면 어머니는 밥이며 국이 다 식었다고 안타까움을 담아 혀를 차며 국냄비에 부었던 국을 다시 떠주곤 하셨다. 노느라 몰랐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동안 밥상에는 수저와 그릇이 부딪는 소리만 들렸다. 스마트폰이 없던 옛날 얘기다.

바깥의 찬공기와 따뜻한 밥과 국 냄새가 두드러지는 요리의 잔향과 어두워지면 때 늦지 않게 좀 들어오라는 몇 차례 반복되는 지청구 소리가 하나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의 공기는 분명 들이쉬면 배가 불렀을 것만 같은 느낌. 우리의 뱃속과 마음을 채워주던 어머니의 든든한 한 숨. 숨만 쉬어도 배가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의 시작은 그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31109_155554716_01.jpg 언제나 10년 만에 만나는 것처럼 끌어안는 아이

나이들수록 예전 일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만큼 떠올리기까지 천천히 숨 쉬기를 여러 번 했다. 아직 덜 나이들었다고 기뻐해야 할지, 예전 일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고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순간, 그 풍경은 이미 오래 전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잃어버린 시간, 숨이 배부르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의 다른 이름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느린 걸음과 찬찬한 호흡 덕분에 오래 잊고 지낸 기억을 되찾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도 여전히 해질 때까지 놀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 아직 일락산(공주 원도심에 있는 산 이름)을 다 넘지 않은 해를 가리키며 "아직 해가 있잖아!" 말하는 아이는 어린날의 나 같고 그런 아이를 달래는 나는 그날의 엄마 같다.


서울에서 지내던 마지막 몇 년은 한 문장으로 "너무 많이 먹었다"고 적을 수 있다. 밥도 매운 것도 술도 대학 신입생 이후로 제일 많이 먹었다. 초코파이는 열두 개를 사면 열 개를 한 자리에서 먹는데 그래도 어쩐지 허기가 가시지 않아서 다른 자극으로 배를 채우는 날도 있었다. 책도 많이 사서 수만 쪽을 먹어치웠지만 그럴수록 세상이 자꾸 낯설고 멀어지는 기분만 커졌다. 균형을 잃은 과식. 지금 돌아보면 그건 하나의 병. 그때의 나는 환자였던 셈이다. 황소를 보며 그보다 더 크게 배를 부풀리려고 무리하다 죽어가는 청개구리 신세.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사물이 둘로 보이는 복시 역시 마음의 허기와 스트레스가 가져온 것이었다. 더 많이 먹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깊이 들이쉬고 느리게 내쉬는 숨이 필요했다. 대도시에 산다면 견뎌야만 하는 일, 추구해야만 하는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와 잘 맞지 않음을 비로소 인정하고 백기를 들기로 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4년이 지났다. 높은 건물과 도로 가득한 자동차 앞에서 숨죽이지 않아도 되는 일상. 덜 먹어도 오히려 덜 허기지는 날들. 천천히 걷는 일, 산책과 산보가 잘 어울리는 낯선 도시 공주에서 나는 아이가 되었다가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가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