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의 삼요소

삶에 필요한 세 가지 호흡에 대하여

by 가가책방

오늘도 무사히 숨 쉬었다.

원도심 일락산 주변의 노을은 길지 않은 겨울 낮이 마지막 숨을 내쉰 입김 같다.

뭐든 익숙해지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잊고 지내다 문득 알아차렸더니 뭔가 쓸쓸하고 아쉬워서 슬픔에 가까운 느낌이 들이닥친다. 무사히 숨 쉬었다는 말에는 어딘가 무사히 숨 쉬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적지 않으며 그 일과 마주치지 않기를 기도하거나 마주치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의미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몹시 넓은 데다 끝마저 아득하고 어렴풋해서 어쩌면 두렵기도 했을 하루의 끝까지 무사히 항해를 마쳤음에 안도하는 초보 항해사가 된 기분이다.


첫울음 이후 오늘까지 숨을 쉬는데 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 감기에 자주 걸렸고 심하게 앓기도 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아서 '숨을 쉰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시골에 살았으므로 가까이에서 죽음의 모습, 흔적을 종종 목격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숨짐이어서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마지막 숨조차 슬픔보다 창백하고 차가운 인상으로 스쳐 지나갔다. 숨을 쉬는 것과 숨지는 것. 어느 것도 내게 특별하거나 의미 있지 않았다.

KakaoTalk_20231116_155002263_04.jpg 구름에 노을 진 하늘

숨, 호흡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다. 숨도 좀 쉬어봐야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호흡에 대해 생각해 볼 만큼 여유가 생겼거나 반대로 호흡에 대해 생각해야 할 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거나. 오늘의 숨, 호흡에 대한 생각은 매년 이맘때 돌아오는 어느 날에서 시작한다. 한국에 태어난 한 아이가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으로 맞이하는 특별한 날. 마치 모든 아이들이 오늘만을 위해 십수 년의 시간을 살아온 것처럼 간절해지는 날 말이다. 수학능력시험, 수능이라고 줄여 부르는 그날. 그날밤 한 학생이 스스로 숨지기를 선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이 무렵이면 드물게 호흡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호흡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흔히 하듯 둘로는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 들숨과 날숨으로 나눌 수 있다. 길거나 짧거나 나이 들었거나 어리거나 모든 숨은 들이쉬거나 내쉬거나 중 하나다. 그럼 셋으로는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깊은숨, 얕은 숨, 가쁜 숨?

그렇게 나누어 볼 수도 있지만 이번엔 이렇게 나눠보려고 한다.

몸의 호흡, 머리의 호흡, 마음의 호흡.


10시 40분, 유난히 하루가 긴 금요일이 고단했는지 드물게 아이보다 먼저 잠든 아내의 가벼운 코 고는 소리와 밤마다 찾아오는 잠과 싸워 이길 셈인지 한참 버티다 겨우 잠들어 점점 깊어가는 아이의 숨소리를 두고 나와 이어 적는다.


나는 최근까지도 몸의 호흡만 인지하고 살아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폐의 활동으로 온몸에 산소를 보내어 생을 이어가는 것이 호흡의 유일하며 유의미한 목적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사실은 여전히 몸의 호흡, 온몸에 산소를 보내는 활동이 가장 중요한 호흡의 요소라는 생각에 변함은 없다. 깊이 숨 쉬고, 천천히 숨 쉬고, 일정하고 안정적으로 숨 쉬는 일이 몸은 물론 마음에도 영향을 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뒤이어 적은 머리의 호흡이나 마음의 호흡의 비중 역시 점점 커지고 있는 게 진실이다.


머리의 호흡은 가장 정리된 게 적은 영역이다. 지금은 책을 읽는 모든 과정, 독서와 그에 관련된 활동들을 머리의 호흡이라고 여기고 있다. 호흡이란 결국 드나드는 것이므로 자극받거나 변화하기 어려운 머리의 영역, 즉 생각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독서만 한 활동이 없다는 게 지금의 결론이다. 10년 전의 나를 지금과 나란히 두면 외양을 빼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변했다. 그 변화의 가장 큰 계기이자 영향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나의 옳음을 재확인하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나만이 옳을 수 없음과 생각의 다름을 알게 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다른 동시에 닮아있다는 걸 깨달은 뒤로 외로움과 적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음의 호흡은 제일 최근에 주목하게 됐다. 정확히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자각한 부분이다. 호흡에도 완급이 있는 것처럼 가족을 대하는 마음에도 완급이 있다. 완급이란 느림과 빠름이다. 좋은 마음, 염려하는 마음이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좋은 마음은 결국 알아차릴 것이며 염려하는 마음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며 지냈다. 느리기보다 빠른 게 낫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바꾸기 전에 알려주거나 바꾸는 게 좋겠다며 호의로 가장한 간섭을 해왔던 거다. 어린 날에 친구들과 놀며 유치하게 "네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하던 기억이 전혀 유치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된다.


호흡의 삼요소는 몸, 머리, 마음이다. 몸의 호흡, 머리의 호흡, 마음의 호흡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을 조금 이어가면 살기 위해서는 몸과 머리와 마음의 호흡이 적어도 최소한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공기가 나쁜 곳에서 오래 머물거나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면 몸의 호흡이 원활하지 않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만의 생각을 고수한다면 균형을 잃기 쉽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균형을 잃은 생각은 독단 혹은 독선이 된다. 옳기만 한 생각은 우리를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마음이 일방적이어서 배려를 잃어버리면 그보다 나쁜 마음이 없게 된다.

"다 너를 위해서."

이 말은 그 어떤 일방적 호의나 배려, 마음씀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호흡의 삼요소의 핵심은 조화로운 호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무슨 옛날 책에 나오는 도사들이 할 법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몸과 머리, 마음의 문제가 조화를 잃는 데서 시작된다. 조화는 기적이나 이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서로 잘 어울리는 것,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등하게 대하며 귀 기울이는 데 있는 게 아닐까.

비 오는 수능날의 노을

올해 수능 시험일에는 비가 왔다. 하루 종일 내려서 시험을 만족스럽게 치르지 못한 이들의 기분을 무겁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별 쓸모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어두워지고 보니 서쪽 하늘 해진 자리에 붉은 노을이 떠 있었다. 노을 틈으로 어둡지만 파란 하늘도 얼핏 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 순간에 온 생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한숨으로 평생의 숨을 다 쉴 수는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므로,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충분하고도 충실하게 숨 쉬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보다 더 많은 숨을 쉬고 난 후에는 호흡이 삼요소가 아니라 사요소나 오요소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뭔가 웃긴 장난 같고 별 것 아닌 농담 같은데 이렇게 적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큰 숨이 비로소 가슴에서 빠져나온다. 방금 빠져나온 숨에 안도라고 이름 짓고 싶은 기분.


안도.

지금, 저마다가 사는 곳에서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