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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28. 2024

사람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머물기를 택한다

역사 속 사람들보다 지금을 함께 사는 사람들이 백 배 천 배 소중하다

 역사 속 옛사람보다 지금을 함께 사는 사람들이 백 배 천 배 소중하다.


 글을 올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왔다. 문을 열어주어 뱃속과 마음을 따뜻하고 든든하게 해 주던 식당 사장님이다. 벌써 2년도 전에 문을 닫았지만 지금도 그 든든함과 따뜻함이 잊히지 않는다.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끊어질 줄 알았던 인연은 사장님의 드문 연락으로 단단히 이어지고 있다.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들이 사랑하는 공주가 좋아서 이사를 하고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응원하고 보듬어주던 분들이다. 사실 공주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는 음영이 옅은 배경에 불과하다. 오히려 공주에서 살며 만나고 이어진 인연이 가장 든든하고 힘이 되는 배경인 거다.


 어려서부터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에게 더 엄격했다. 나 자신에게는 더 가혹할 만큼 엄격하게 굴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지키지 못할 거라는 마음과 세상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른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컸다. 경계심이 강했고 의심을 쉽게 거두지 못하는 마음 탓에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외로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라 위안을 삼고는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혼자일 때 먹을 수 있는 마음이어서 가족이 생기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는 갈등과 고민의 큰 줄기가 되었다. 그런 경계심 강한 마음을 풀어준 게 공주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내게 공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그 사람들이고 그들과의 인연인 것이다.


 전화 한 통으로 내가 왜 공주를 사랑하고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며 지금의 풍경과 사람이 변해가는 걸 아쉬워하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사람이 떠나는 것과 사람을 떠나게 하는 것이 싫은 거다.

우리가 사랑했던 샘물식당

 어디나 그렇겠지만 공주 원도심에 유독 부족한 게 매일 한 끼의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의 존재다. 공주에 정착하고 2년이 다 되도록 저녁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지인들과 정보를 공유하곤 했지만 늘 부족하거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샘물식당이라는 명품 파닭계장과 백숙을 파는 곳이 생겼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사장님 부부는 또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한지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의 소란함을 너그럽게 견디며 식당을 놀이터와 쉼터로 내어주셨다.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오가며 쉬어가기도 하다 보니 가족 사랑방이 되는 건 금방이었다.


  공주에서 학교를 나온 사장님은 외지에서 이사 와서 공주를 너무 좋다고, 사람들도 너무 고맙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고맙다며 늘 넉넉히 웃어주셨다. 그 어떤 환대보다 그분들의 환대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건 그 웃음에 조금의 거짓이나 억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공주에 오래 살아도 그분들처럼 순수하게 반기고 기뻐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아끼고 즐거웠기에 샘물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아쉬움이 컸다. 편히 찾아가서 서로 인사하고 덕담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그 사소한 일상이 더 이상 일상적인 일이 아니게 된다는 허전함 때문이었다. 가깝지만 멀리 사는 형제나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소중하다는 실감이 그분들에게서 왔다. 어른임에도 먼저 소식을 듣고, 선뜻 연락하고 ,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중에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그분들에게서 배웠다. 그것이 내가 공주의 이웃에게서 배운 가장 소중한 마음 중 하나다.

가가책방 옆 무궁화 회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19년으로 돌아가면 공주의 넉넉한 마음과 만난다. 그때는 혼자 내려와서 밤늦게까지 뚝딱거리며 나무를 깎는다 벽지를 뜯는다 소란을 피울 때다. 책방을 만든다고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나무를 깎는 모습을 보며 '젊은 사람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목공소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렇게 저녁 무렵까지 전구 하나를 켜놓고 일을 하고 있으면 문이 스르르 열리는 소리에 이어 '밥은 먹었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옆집에서 무궁화 회관이라는 한식당을 하는 사장님의 목소리다. 저녁이 아직이라는 대답에 사장님은 흔쾌히 당신들의 저녁 식탁에 나를 불러다 먹였다. 당신들 식사라 반찬이 없다고 얘기하시는데 반찬이 10가지가 넘는 날도 많아서 한 번 놀라고, 밥값은 됐으니 많이 먹으라며 두 그릇씩 꺼내주는 넉넉함에 놀라고 아들 생각이 나서 그런다는 친절에 부담을 느낄까 배려하는 마음에 또 놀랐다. 그때부터 공주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누군가는 공주의 텃세가 너무 심해서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우리가 잘 살아서가 아니라 공주를 좋아하는 마음이 비슷한 사람들과 자꾸 만나게 되는 인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가책방에 들른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마음들

 우리가 공주라는 낯선 지역을 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신문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제일 먼저 언급하고는 하는 낮은 건물과 평탄한 지형, 제민천의 여유로움이나 조용함보다 공주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아서 머물기로 마음먹었고 또 다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마음을 열어 두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거다. 


  우리와 비슷하게 조금 다르지만 닮은 이유로 공주에 살거나 머물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우리는 이방인이자 외지인으로 공주에 왔지만 누구보다 친한 공주 사람들을 몇 명씩은 알고 있고 서로 소개하며 인연의 실을 복잡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무엇을 얻기 위해, 뭔가 새로 생겨서 지역에 살고 싶어 질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으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지역에 머물기로 마음먹는 사람들보다 적을 것이고 오래 계속되지도 못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람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머물기를 택한다는 결론에 닿는 것이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지역에 산다. 길을 가다, 단골 카페에 들러서 우연히 만나 일상을 나누며 웃는 잠깐이 혼잡한 도심 속 도로와 지하철로 돌아갈 마음을 자꾸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지역이나 땅에도 기회가 있겠지만 결국 진짜 소중한 기회는 사람에게 있고 사람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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