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도 자랄 수 있을까

어떤 성장의 증거

by 가가책방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결과를 내는 사람."

언제였는지 누구였는지 모르는 사람의 말. 어쩌면 어딘가에서 읽었는지도 모르는 그 말이 가리키는 사람이란 두 글자로 '어른'이었다.

어른과 어린아이를 나누는 기준으로 책임을 꼽는 이유와 닿아있다.

지난 연말에 시작해 10회 차에 걸쳐 30시간 동안 '브런치 작가 되기' 강의를 했다. 누구는 대단한 일이라고 하고 누구는 그런 강의도 듣는 사람이 있느냐며 놀렸다. 나에게 둘 중 어느 쪽이냐고 누군가 물었다면 후자라고 했을 것이다. 단지 브런치 스토리라는 플랫폼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수업은 글쓰기 비중이 컸다. 쓰는 기술보다 자기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연습에 시간을 더 할애했다.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애썼다. 그 시간은 몹시 즐거웠다. 전혀 다른 내가 된 것처럼.

엄밀하고도 솔직히 말하면 나란 사람은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고 부추기는 사람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하려면 하고 아니면 말라고 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말려도 한다. 하지 않는 건 못 해서가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못을 박는 사람인 것이다. 글 쓰는 게 어렵고 막막하다고 하면 일단 써보라고 하고 써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박절하게 구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그랬던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강의 내내 즐거울 수 있던 건 왜일까.


삶의 터전을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옮기고, 가족이 생겨나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과정이 모두 쉽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이루어졌는가?

그럴 리가.

지금 와서는 별로 어렵지 않게, 고민도 없이 스르륵 된 것처럼 얘기하지만 적지 않은 갈등과 고민을 지나며 무수한 선택을 한 결과 지금에 닿았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마음을 먹는 사람이 어른인 건지, 조금은 어른이 된 건지 아니면 어른이라는 말에 사로잡혀서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어느 것이든 상관없이 나는 조금 자랐다고 믿고 싶다.

오늘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오늘을 기록한다면 첫 문장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였다.

그 순간, 그 자리는 처음 계획과는 조금 거리가 먼 자리였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어떤 결과도 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한 점도 마음에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이제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어떤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으므로.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으므로.


어른은 혼자여도 괜찮은가?

어른은 홀로 서야 하는가?

어른에게도 곁을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오히려 어른이라서 곁에 누군가가 있어줘야 한다. 어린아이를 마냥 혼자 내버려 두지 않듯, 삶의 때때로 무사와 안부를 묻고 답해야 한다. 그런 믿음 속에서 비로소 조금 더 어른답게, 어른스럽게 자라는 것 아닐까.

무대 위에서 함께 연주하는 두 사람. 한 사람은 바이올린을 켜고, 다른 한 사람은 기타를 친다. 바이올린은 줄이 넷이고 기타는 여덟이다. 여섯 개짜리 기타만 보던 사람에겐 저런 기타도 있구나 하는 놀람도 있다. 그보다 놀라운 건 두 사람의 표정. 난 그처럼 엄숙하고도 즐거운 표정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어른의 표정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즐거워하는 마음과 자신의 연주를 대하는 진지한 마음과 둘의 소리와 호흡이 어우러지는 순간의 기쁨과 왠지 들썩이려는 어깨를 간신히 억누르며 낯설어하는 관객의 마음.

연주를 마치고 인사하는 두 연주자에게 힘껏 박수를 보내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모든 순간, 나는 조금 더 자라난 어른이었다.

무대.jpg 2026년 2월 6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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