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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해보는 자만심

좁은 수로에서 추월하는 마음.

by 전희태


JMD-01(3389)1.jpg 레이더 스코프상에 나타나는 물표의 영상과 안전침로 설정 구역의 모습.



대우 스피리트호에 처음 승선하며 느꼈던 가장 섭섭했던 일중 하나가 속력이 늦은 편이라서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만나는 거의 모든 배들한테 뒤쳐진다는 답답함이었다.


그랬던 나의 마음에 오늘 저녁만큼은 한 가닥 청량한 즐거움을 줬다 할까? 하여간 우리 배한테 속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레이더 화면으로 확인하면서 추월할 수 있게 된 배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선박 모두 조마드 수로를 통과하려고 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추월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가 수로의 중앙부에 도착할 무렵임을 계산해내니 잠깐 추월을 머뭇거리게 되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쨌거나 상대선과 통화를 하여 상황을 파악하려 VHF전화로 연락을 시도하니 응답하고 나온 그 배는 한국적 선박으로 H상선 소속의 H아일랜드호 였다.


우리 배가 가장 뒤떨어지고 저속으로 다니는 배 인 줄로만 알고 있던 내 상식(?)이 그렇지 않다는 판정을 받게 되는 일이 평소 8 놋트의 속력으로 항진한다는 그 배로 인해 생겼으니 아하 우리 배가 따라잡을 수 있는 배도 있구나! 하는 웃음 띠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추월이 완성될 예상 해역이 조마드의 좁은 수로 중알부 부근이어서 혹시나 우리들과 반대로 북상해오는 배라도 수로 안에서 만나면 신경께나 써야겠다고 걱정도 들어서 조마드의 수로에 좁혀서 고정시켰던 레이더의 레인지를 크게 키워서 수로의 남쪽 입구에서 10마일 이상 벌어진 곳까지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런 마음가짐은 위기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한 때문이었을까? 거리를 넓혀 본 레이더 화면에 조마드의 입구를 향해 열심히 북상 중인 배로 보이는 물체가 환한 작은 점으로 새롭게 찍히고 있었다.

추월을 해야 하는 일과 서로 마주치는 타 항행선과의 항법을 복합적으로 해결해 내야 하는 일이 발생하여 마음 조리며 조심스레 항행하여야 하는 힘든 시간을 좁은 해역에서 맞아야 할 것을 예감하며 신경을 곧추 세운다.


이제 우리 정 선수 앞, 3 마일까지 가까워진 배를 추월할 수는 있지만 껄끄러워진 기쁨(?)을 누리려고 VHF전화로 확인을 하여 추월할 때에는 그 배의 오른쪽으로 접근하여 우리의 좌현을 보여주며 추월하도록 하겠다는 양해도 받아놓았다.


우리와의 통화를 끝낸 후 H아일랜드는 곧 북상 중인 상대선을 불러 홍 대 홍( 좌현 대 좌현)으로 통항하자고 이야기하는 말이 우리에게도 전해져 왔다.


드디어 조마드의 중앙부 부근에서 북향선과 H. 아일랜드호의 홍대홍 항법 항해가 시작되었고 H. 아일랜드호의 뒤를 쫓던 우리 배도 같은 좌현 대좌현 형태로 아슬아슬한 조심성을 가지면서 무사히 지나치게 되었다.


하지만 수로 내의 조류가 H아일랜드호의 늦은 속력에 과하게 영향을 주는 때문인지 침로 유지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모습 되어 점점 가까워지는 H아일랜드호의 꽁무니에의 접근을 겁이 나게 만든다.

이때 VHF 전화가 오면서 자신들은 속력이 낮아 타효가 떨어 저서 굉장히 많이 조류에 밀린다며 추월하는 일은 좁은 곳이라 어려우니 현재의 거리를 유지하여 달라는 새로운 연락이 온다.


나도 너무 가깝게 접근됨은 좁은 수로이기 때문에 조선을 할 충분한 거리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즉시 기관실에 연락하여 속력을 좀 더 낮추어 거리를 유지토록 했다.


하지만 1.5 마일부터는 가까워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어물거리다가는 그 배와 충돌하거나 아니면 산호초 위에 좌초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관실에 조속히 RPM을 낮추어 메누버링 초미속으로 달리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우리의 앞에서 계속 알짱거리듯 움직이는 H아일랜드더러 좀 더 왼쪽으로 타를 써서 우리의 항로를 더 이상 위험한 오른쪽으로 가지 않게 해달라며 그들의 코스를 물어보니 174도라고 이야기한다.

본선의 코스가 현재 187도인데 그런 코스를 가지고 우리의 선수 왼쪽에 걸쳐서 어물거리고 있다는 것은 그 배가 너무 기동력이 없어서 조류에 밀리고 있다는 증거이니 좀 더 왼쪽으로 틀어 줄 것을 요청하며 우리의 침로를 185도 원래의 코스에 정침 시키며 텔레그라프를 다시 전속 전진에 놓아주었다.


이제 조마드 수로 중앙을 나란히 서서 통과하며 거의 170도 정도로 변침 하여 본선과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 배의 꽁무니를 피하면서 우리는 DALRYMPLE BAY를 향한 코스로 접어들었고 그 배는 뉴캐슬을 향한 항로로 헤어지게 되었다.


비교 우월감을 만끽하려던 마음이, 한참 동안 피를 말리고 땀을 빼내야 하는 항법 시행을 실시하면서 쭈그러들었지만, 이제 모두가 무사히 끝났다. 그 얼마 동안의 피를 밀리는 듯한 긴장감에서 해방된 마음에 우리한테 지는 배도 있다니! 하는 세상사의 우여곡절이 새삼스럽다.


푸근하게 누그러진 여유 속에 새삼 자세히 알려지는 이야기에 H 아일랜드호는 H상선에서도 가장 문제가 많은 낙후된 배중의 한 척이라는 증언이 한때 H상선에 근무했던 경험을 가진 우리 배의 선원 입을 통해 알려진다.


결국 그렇게 크게 자만심을 가지고 대 할 일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지만 어쨌거나 그동안 늘 떨어지고 추월당하기만 하던 입장에서 추월을 하고 나니 약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은 되었으리라 억지를 부려본다.

바다 위에서는 이렇게 별 일 아닌 일도 별 일같이 대하며 지내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적한 항구에 도착할 날짜가 눈앞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일모레가 되면 다림 풀 베이에 도착할 예정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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