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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해도

by 전희태
HAYPIL4(9342)1.jpg REEF PILOT를 싣고 오는 헬기



전 항정에서 약 100 마일 정도의 거리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도선사를 쓰지 않고 적재항인 다림풀베이에 가는 항로를 이용하기로 작정하고 모든 연락을 그에 맞춘 ETA로 대리점등에 통보하며 출항하였었다.


출항 사흘 후 점심때, 본사로부터의 간단한 전화 한 통화가 그런 계획을 철회하고 도선사를 쓰는 항로를 택하여 전속으로 항진하게끔 계획 변경하도록 통보해 왔다.


PALM PASSAGE가 전자의 항로이면 HYDROGRAPHERS PASSAGE가 후자의 항로이다. 후자의 항로로 결정이 된 이상 헬리콥터로 내선 하는 도선사와의 예정된 랑데부를 위해서는 정확한 ETA의 통보를 도착할 때까지 지속시킬 일이 남아있다.


상기 두 항로 모두는 호주 동쪽 해안과 바다 사이에 커튼처럼 쳐 저 있어, 달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그레이트 배리어 산호초(대보초)의 가운데를 통과 지나다닐 수 있게 항로로 지정된 곳으로 HAY POINT나 DALRYIMPLE BAY를 찾아갈 때 가장 짧은 거리로 이용할 수 있는 항로이다.


그중 HYDROGRAPHERS PASSAGE는 도선사의 사용이 필수인 강제 도선구로 호주 본 육지에서 120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산호초의 입구 등대 부근에서 헬기로 오는 도선사를 맞이해야 한다.


다행히 도착시간이 26일 17시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로부터 124마일을 더 가야 목적지 항구에 도착하는 예상이니 원래의 이티 에이 통보보다는 열 시간 가까이 도착이 당겨지는 때문에 화물의 실릴 양이나 싣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달라질 수가 있어 지금껏 통보받았던 28일 오전 접안 30일 오전 출항 예정이 변할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조석을 살펴보면 도착이 늦어질수록 조고 차가 낮아져 화물 실을 양도 그에 따라 줄어드는 경우가 되니 만약 일찍 도착한 만큼 조기 출항이 된다면 화물의 선적량도 그에 따라 늘어날 것이 기대되는 형편이다.

어쨌거나 정확한 도착의 약속시간을 72시간 전부터 도선사 사무실로 보내 주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도착되기 한 시간 전쯤에 VHF 전화로 마지막 확인을 해오는 관례를 가지고 있다.


관례에 어긋남이 없이 이번에도 우리 배를 부르더니 이티에이(ETA,도착예정시간)를 다시 물어와 한 15분 빨라진다고 말을 전하니, 그 예정보다 5분 빠르게 본선에 도착할 것이란 연락으로 응수해준다.

이윽고 약속한 시간에 헬리콥터가 서쪽 하늘에 나타나더니 본선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아 모든 랜딩 상황을 점검한 후 안전하게 헬리포트 위로 내린다.


본선에서 일박을 하며 도선업무를 해야 하는 도선사는 짐을 잔뜩 들고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데 3항사가 마중하여 브리지로 안내해 온다.


바쁘게 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제일 먼저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작동을 시켜준 후 안테나를 밖으로 내어주어 위성으로부터 GPS 위치를 받아 전자해도가 장착된 컴퓨터 화면에 본선의 위치가 나오도록 조정하는 일부터 한다.

어두운 브리지 실내에서 컴퓨터가 내뿜는 하이드로 그래퍼의 해도가 천연색 때깔로 나타나더니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예정된 항로를 따라 제대로 항행하는지를 아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말로만 듣던 전자해도와 DGPS의 화합으로 본선의 위치를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어 주는 그런 첨단제품으로 무장하고 올라온 파이로트를 보니 세상은 역시 급격히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점을 절감하게 한다.


마침 컴퓨터의 전자해도 위에 GPS로 그려지는 본선의 위치를 확인해보며 방금 본선의 GPS로 추출하여 해도에 그려 넣었던 위치와 속으로 비교하고 있는데 파이로트가 옆으로 다가 서면서


-IT'S VERY EASY.

하며 말을 걸어오는데 나는 그저 웃어 주기만 하였다. 편리하고 어쩌면 간단해 보이기까지 한 그 물건에 대한 내 감정의 동의를 충분히 표현하지 않음은 조금은 샘이 나는 이유도 었었지만, 아직까지는 법정 비품도 강제 사용을 요구당한 제품도 아니기에 너무 전자해도에 파묻히는 점을 경계하고 싶은 뜻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언젠가는 그런 법적인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들 항해사에게는 필요불가결의 물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정 안 할 수 없는 물건이 전자해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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