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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사의 기절 소동

과식이나 위에 갑작스러운 부담이 생기면...

by 전희태


090404주방 036.jpg 선박의 주방 풍경


저녁 식사 메뉴로 오랜만에 돼지 족발이 나왔다.

마침 식탁에 먼저 와 식사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보다 유별나게 수북하니 쌓아 준 족발 접시를 들고 나타나는 일기사를 보면서, 주방 근무자들이 평소 그 친구의 먹음 새를 훨씬 넘치게 너무 많이 준비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한번 더 힐끗 쳐다봤다.


모두들 포만감을 안고 먼저 식사를 끝낸 사람들도 그대로 식탁을 지키며, 식후 담소를 즐긴다. 어쩌다가 이야기 주제가 의료행위였다,

-의사들은 의료 수가를 올리기 위해 비싼 검사를 마구 시킨다. 불만이 깃든 경험담들이 먼저 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수술에 관한 이야기로 접어들면서는 부러진 뼈를 드릴로 구멍을 낸 후 뼈가 붙을 수 있게 쇠를 대어, 부목 같은 역할을 시키게 꿰매었다가, 나중에 뼈가 붙고 나면 다시 살을 째어 쇠막대를 빼어낸다는 의료 기술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외과 의사들이 수술을 하면서 피를 너무 자주 보기 때문에 집도한 후에는 술을 많이 마신다는 둥 여러 가지의 수술과 피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맨 마지막으로 식사를 끝내며 자신의 족발 접시를 모두 비우고 숟가락을 놓으려든 일기사가 갑자기 얼굴색이 하얗게 변색되며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슬그머니 옆으로 무너지듯 쓰러지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간질 증상이 발작하여 그런 것 같다고 여기기에는 너무 조용한 동작으로, 말은 못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정신을 꽉 붙잡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모습이 순간적으로 아주 애달파 보였다.


모두들 놀래는 중에 일기사와 가까이 앉았던 통신장이 얼른 부둥켜안아 쓰러지지 않게 잡아준 후, 손을 주물러 주면서 평정심을 가지도록 서두르고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먹던가 하여간 위에 갑자기 큰 부담이 가는 경우 이런 현상이 생긴다며 양손의 합곡혈을 문지르며 안정을 시키는데 일기사는 이마에 식은땀이 돋아나며 손마저 싸늘해지고 있다.


아무래도 식탁에 그냥 앉혀놓고 우왕좌왕하느니 눕혀 놓고 돌봐 주는 게 좋을듯하여 기관장과 통신장에게 부축하게 하여 옆방인 사관 라운지로 자리를 옮겨 편하게 소파에 눕혀 준 후, 땀도 닦아주고 다시 찬찬히 손을 마사지해줬다. 잠시 후 일기사는 정신을 차려 일어나 앉으려고 하며,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말을 한다.


좀은 머쓱하고 겸연쩍기도 한 듯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도 얼굴빛이 하얗게 바랜 건 덜 누그러져서 좀 더 누워서 정신을 가다듬고 난 후 당직에 들어가도록 권고한다.


-이제 정말 괜찮아졌습니다.

일기사는 또 한번 손사래를 치며 급히 불려 온 3항사가 갖고 온 활명수 한 병과 소화제를 함께 복용한 후 자신의 당직 장소인 기관실로 내려갔다.


일기사가 평생 자신도 처음으로 당해 보는 원하지 않았던 이상한 경험에 당황하며 어지러워하고 있던 순간, 나는 그의 손을 만져가며 주물러주면서도 속내로는 이런 식으로 아프다가 혹시 배를 돌리어 병원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하는 최악의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점점 어려워질지도 모를 다음번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일기사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보다도 혹시 생길지도 모를 또 다른 후유증으로 인해 나 자신과 배 자체에 부여될 귀찮고 힘든 일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얄팍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아주 가까운 동료들이란 뜻으로 이야기되는 그야말로 <한 솥밥을 먹는 사이>라고 말하는 선원 사회에서 실제로는 그런 만큼의 애정이나 관심을 서로에게 갖지 못한 채 혼자만의 이기심이 기승부리는 생활도 경험하는 선원들의 동료들을 대하는 치졸한 한 단면을 대표적으로 표출시킨, 부끄럽지만 나도 가지고 있는 이기심이 아닐까?


그런 것 같다는 내 마음속 자평을 느끼며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픈 마음도 들지만 어찌하랴 그게 바로 나인데 하는 자조의 푸념이 씁쓸함을 돋아준다.


어찌 됐건 내 마음의 그런 갈팡질팡이 그대로 기(氣)로 변해, 잡고 있든 손을 통해 일기사에게 스며들어 그 아픔이 더욱더 나빠질까 봐 겁도 났었다. 마음속에 이런 이기심을 외면해 보려고 주물러주던 일기사의 오른손 손바닥까지 배어 나온 땀까지 닦아주던 중에, 다행히 일기사는 정신을 추스르며 일어났던 것이다.


저녁 여덟 시가 되었다. 저녁 식사 후의 남아 있던 당직 시간을 마저 마치고 올라 온 일기사가 내 방을 찾아왔다.

-수술 이야기랑 그런 걸 귓등으로 들으면서 족발을 먹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지며 구토 증세가 오더군요.

하며 자신이 쓰러지던 순간들의 상황을 설명하더니,

-걱정하셨죠? 이젠 괜찮습니다. 하는 인사를 하고 내 방을 떠난다. 은근히 걱정이 많았던 저녁이었다.


다행히 그 이상의 어려움은 생기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평소에는 내재되어 나타나지 않던 나의 이기심을 즉시 알아보게 된 점을 계기 삼아 스스로의 심정을 차분하게 반성해 본 하루가 보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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