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번 찾아갈 곳은 어느 항구?
보통 다른 항차에는 귀항 길의 막바지인 국내 입항 일주일에서 사나흘 전에나 연락 오던 다음 항차 지시에 대한 내용이 어쩐 일인지 이번 항차에는 일찍이도 와 있다.
SALDANAH BAY와 RICHARD BAY 두 항구를 기항하여 각각 4 만 톤과 11만 5 천 톤의 철광석과 석탄을 싣고 포항으로 가라는 지시가 일단 텔렉스를 통해 들어와 얌전하게 보아주기를 청하고 있다
처음으로 가야 하는 항구이긴 하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이름이나 대강의 위치는 알고 있었기에 살다나 베이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두 선적지인 살다나 베이와 리처드 베이는 아프리카 남아공화국의 항구로 전자는 케이프 타운 가까이 있고 후자는 석탄을 선적하러 자주 기항한 경험이 많은 항구이다.
하지만 텔렉스를 전달해주는 통신장은 처음으로 그런 이름을 듣는지 궁금해하며, 그 먼 사우스아프리카까지 갔다 와야 하는 항정에 대해 별로 즐겁지 못한 듯 굳어진 표정을 짓는다.
살물 운반 부정기 원양선에 배승 되어 있는 우리들의 마음은 그래도 늘 다니던 곳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 어딘가 낯익음 때문에 편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화물 따라 세계를 누벼야 하는 본선의 특성상, 매 항차가 끝이 날 무렵이면 다음엔 어느 곳에 어떤 화물인가를 알려주는 차 항차 지시서의 도착을 궁금하게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알림의 통보가 다른 항차와는 달리 꽤나 빠르게 또 화물은 두 종류를 각각 종류별로 선적한다고 알려 온 것이다.
지시서의 내용대로 따라 할 경우, 왕복으로 통항해야 하는 중간에 끼어있는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이나 말락카해협과 그에 접근하는 해역에 준동하는 악명 높은 해적 취약지역에서 며칠간 철저한 경계를 실시하면서 지나다닐 일부터 떠오르니 피곤한 부담이 슬그머니 더해진다.
그렇긴 해도 준비된 화물이 전 선창에 철광석을 싣는 일이 아니어서 보톰 헤비(Bottom Heavy) 상태는 벗어날 수 있는 게 좀 다행스럽다. 석탄만을 실었던 형편에서 최소한 철광석을 실어야 하는 두 선창은 물로 깨끗이 씻어내는 수세식 청소를 해서 철광석과 석탄의 찌꺼기가 서로 섞이지 않게 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선원들이 열심히 치러내야 하는 일로 남게 되었다.
전에 본선에 승선했던 누군가는 그런 귀찮은 일-선창 청소- 때문에 본선에 계속 승선 근무하는 것을 기피한다며 연가로 내리겠다는 이야기를 관철한 선원도 있었다.
사실 항해 중 선창 소제를 위한 작업, 그것도 물로 씻어내고 찌꺼기를 들어내야 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만만하게 보거나 쉽게 여길 작업이 아님은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껏 같은 종류의 화물, 석탄만을 실었기 때문에 좀 소홀했던 선창 청소를 석탄에서 타종인 철광석 화물로 바뀌게 되는 4만 톤을 실어야 하는 최소한 두 개의 선창만큼은 미리 깨끗이 청소를 해 두라는 의미로 평소와 달리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회사가 차항 알림의 연락을 해 준 거로 짐작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