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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한 마리 못 잡은 정박기간

호주 외항에서의 낚시질

by 전희태
JJS_4367.JPG 어떤 때는 상어도 올라오는 어장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내가 처음 호주를 기항했던 70년대 시절만 해도 외항에 도착하여 닻을 내려주면 짧게는 일주일 길어지면 달을 넘기어 부두 접안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는 광산에서 석탄을 캐어 본선에다 실어주는 각 과정 중에는 20여 개가 넘는 노조가 결성되어 있는 노조천국(?)이라서 그중 한 노조라도 파업을 하게 되면 그만큼 선적작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기다림이 된다는 소문이었다.


이렇게 장기간 기다리게 된 경우 대부분의 배에서는 통상 과업이 끝난 후의 휴식 시간이 되면 낚싯줄을 드리워서 고기 잡는 일이 지루함을 달래는 큰 소일거리이고 더하여 낙이 되기도 했다.


아직도 호주 기항은 도착하며 즉시 접안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기에 외항 대기 중 선내 낚시를 하는 전통 역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번 항차 우리나라를 떠날 무렵 선내 오락비 중 이십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낚시 도구들을 준비하여 왔는데, 이는 제대로 된 낚시도구도 없이 낚시질하던 그간의 아쉬움을 덜어보려는 의도의 사전 준비이기도 했다.


헌데 그렇게 새로 준비한 낚시도구를 이곳에 도착하여 투묘한 후 즉시 물에 넣어 보았지만, 아직까지 새끼 고기한 마리 조차 못 건지고 있는 형편이 아쉬울 뿐이다.

연 이틀의 밤을 낚시하며 지낼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빈 낚싯줄만 들었다 놨다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번 항차는 막말로 어장 불황에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째로 정성을 다 들여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낚시에 미친(?)듯한 그래서 항상 낚싯줄을 드리워 고기와 씨름질 하는 태도에도 신중함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다 본선에서 없어진 것이다.


꾼으로 소문이 난, 닻을 내리자마자 낚시 줄부터 선미에서 드리워주며 고기를 잡으려는 촉을 몸으로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최소한 배 안에 두 사람 이상은 있어야 배 위에서 어장이 형성될 수 있는 건데 그런 사람들이 지난번 국내 기항시 모두 연가로 내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남이 고기를 잡으면 그때 나타나서 잡은 고기를 회로, 구이로, 맛있게 먹으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남아 넘치고 있는 셈이다.

더하여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올라오는 고기를 잡는 분위기가 되면 합세하겠다는 얍삽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이 한 번씩 낚시장소를 훑어보는 형편이니 어느 세월에 기분 좋은 조황을 만날 수 있으랴.

어구만 잔뜩 준비해 놓으면 마치 고기가 저 혼자 우리를 위해 담근 낚시를 물고 늘어질 거고 그걸 슬슬 갑판 위로 당겨 올리기만 하면 고기는 잡히는 것으로 치부하는 꾼 아닌 꾼 만 남은 모양이다.


이렇듯 고기 잡음을 남들이 해주기만 바라는 사람들만 있어 낚시를 물에 넣는 사람이 없으니 선내 어장 형성이나 심심찮은 동네 어장 형성은 초저녁에 물 건너 가버린 셈인 것 같다.


둘째로는 호주 낚시에서 종종 올라오는 복어가 보이는 게 이유가 된 것도 같다. 몇 년 전 어느 한국 배에서 몇 마리 올라 온 복어의 크기가 아까워서, 요리방법을 안다는 한 사람의 말을 믿고 몇 사람이 회를 쳐서 나눠 먹었는데 칼을 잡아 회를 썰어냈던 사람이 졸음에서 깨어나지 못해 타계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 그런 지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 그나마의 낚시꾼들 사기를 풀죽게 만들어 고기 못 잡는 일에 일조한 것도 같다.


셋째로 꼽을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고기들이 배 주위 환경이 무서워서 피하는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초 저녁 무렵이면 한 번씩 배 주위에 나타나서 설치고 다니는 돌고래들의 출현이, 우리의 낚시터를 <고기반 물 반>에서 물만 남은 곳이 되게 변형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처음 인사를 트는 사람들에게 배를 탄다고 나의 소개를 하면, 대부분의 상대방들은

-생선 많이 잡아먹겠네요?라고 묻는 경우로 대응해 왔었다.

이런 때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까? 순간적으로 궁리하다가

문득 이곳 호주에서 낚시하던 기억들이라도 떠 오르면,

-그래요 생선 많이 잡아먹지요.- 하는 대답으로 해버릴까 하다가도

또다시 아니지 그런 건 아니잖아! 하며 재차 머뭇거림에 빠져

답할 기회를 놓친 경우도 여러 번 있었을 만큼

호주 외항에서의 낚시에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추억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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