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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제일이 몸에 밴 모습

육상 사다리의 고장, 계류삭의 절단

by 전희태


0911029-바릭파판 접안 022.jpg 화물을 싣는 로더에 곁들여 출입사다리를 만들어 놓은 항구도 있지만 이 사진에서는 아니다.


계속 찌뿌듯한 날씨에 우울한 바람마저 한 번씩 불어대니 배는 부두와의 간격을 앞뒤로 슬금슬금 움직여 흔들어 받더니 결국 후부 갑판의 BREAST LINE 한 개가 긴장도가 넘어서며 끊어지고 말았다.


움직임을 계속하도록 날씨가 더욱 나빠진다면 연속해서 줄이 더 터질 판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서, 조금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줄을 걸어 두 개가 나란히 힘을 받게 해주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 작업을 선원들이 자의의 판단으로 결정하여 시행한다면 여기 항만노조의 제재를 받게 되므로 그들의 허가를 득하라는 규정에 따라 일단은 하역회사의 FOREMAN에게 허가를 청해 알림을 주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사실 비상사태 일 수도 있는 이런 일에도 일일이 그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못마땅한 일이지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우리들 마음대로 그런 일을 시행했다가는 막말로 애보다 배꼽이 더 큰 범칙금을 물어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당하는 게 현실이다.

다행히도-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본선 선원이 부두에 내려가서 끊어진 줄은 거두어들이고 새 라인을 거는 작업은 하도록 인정해 주었다.


저녁 22시면 끝내겠다던 하역 작업이 한밤중이 되어 끝이 났다. 이어지는 0120시에 출항을 하려다 보니 바쁘게 출항 준비를 하던 중 잘못된 일이 발생하였다.


작업은 2번 창에 마지막 트리밍 카고를 끝내는 2354시에 끝이 났지만, 드라프트(흘수) 서베이를 하여 화물량을 계산하는 동안 선원들은 항해 준비를 위한 조처에 서둘러 참여했다.


비바람이 치는 속에서 마지막까지 열려있던 8번 창을 닫는 작업을 시도할 때 좌현 쪽 해치 커버를 먼저 닫은 후 우현 쪽의 해치 카버를 닫으려 할 때였다.


안전하게 작업하기 위해선 해치 폰툰 위에 얹힌 육상 사다리를 제거해 달라는 이야기를 TERMINAL 측에 해줘야 하는데, 그냥 닫으려다가 육상 사다리의 끝단이 밀려나며 살짝 접히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원래가 접어지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서베이어가 사다리를 내려놓으며 본선에 승선한 때로부터 한 두 시간 족히 흘렀던 시간에 늘어난 조고만큼 떠 오른 상태 때문에 사다리의 끝단은 많이 내려진 상황같이 되었던 것이다.


끝단이 해치커버와 타이트하게 되어있던 것이 더욱 밀착되어 슬며시 옆으로 당겨지는 해치 커버를 닫는 작업에 뻑뻑하게 반응하다가 그대로 접어지던 부분이 살짝 꺾이면서 사다리에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요약해 보면:

1. 육상 사다리는 드라프트 서베이를 하기 위해 본선에 승선하던 서베이어가 작업 끝나기 두 시간 전쯤에 내려놓은 것이다.

2. 당시 마지막 트리밍 카고 가 2번 창에 선적 중이었고 끝나는 즉시 출항으로 시간이 매우 촉박하므로 작업이 끝나는 대로 해치 커버를 닫으려는 시도가 바쁘게 이어졌다.

3. 선원들은 해치 커버 위에 놓인 바퀴가 달린 사다리의 끝단이 커버를 닫으면 그대로 굴러서 물러 날것으로 판단하고 닫으려고 시도하였는데 조고로 인한 선체 부상으로 밀어 올리는 힘이 강해져서인지 바퀴는 구르지 않고 그대로 사다리 마지막 부분에 유동성 있게 움직이게 해 준 부분이 꺾어지듯이 접히며 그대로 끌리게 되어 일단 작업을 정지하였다.

4. 마침 본선에 승선하고 있던 대리점원 Mr. J (JUSTIN DURANT)도 현장에 가서 확인할 때에 육상의 직원이 와서 사다리를 더 들어 올려놓고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접혔던 부분을 살펴본 후 다시 올라가서 현측 바깥으로 걷어 내었다.

5. 본선의 선원들이 당시 걷히는 사다리의 상태를 볼 때 평상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별다른 이상이 발생한 것 같지는 않았다.

6. 날씨는 풍력 5를 넘나들며 구름이 잔뜩 꼈으며 백파가 좌현 측을 이따금 때리며 지나가는 상황이었음.

7. 서베이어는 화물량을 계산 해 놓은 서류에 바쁘게 일항사의 서명을 받은 후 대리점을 통해 보내주겠다며 서둘러 하선하였고 이미 그때 올라와 기다리던 도선사도 터그보트의 줄을 잡아달라고 이야기하며 브리지로 올라갔다.

8. 뒤늦게 올라온 송화주 측인 DBCT의 Mr. I (IAN GIBBONS)가 본선의 선원들이 작업하다가 DAMMAGE가 발생했다는 식의 인정서를 그 자리에서 바쁘게 쓰더니 서명을 요구해와서 RECEIPT ONLY라는 REMARK를 달아 서명해 주었다.

9. 대리점원에게 필요하면 서베이어를 대어 일의 해결을 쉽게 하도록 말로서 부탁하며 그 들 두 사람을 바로 그 사다리를 통해 하선시키며 출항으로 이어졌다.

위와 같이 초안을 잡아 놓고 사고 보고를 내려고 일항사에게 참조하여 공문을 만들도록 지시하였다.

- 사고 중에 배운 교훈 -

사고가 났다며 현장을 보러 나가는 대리점원을 보고 그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발라스트 컨트롤 룸의 창을 통해 내다보았다.

대리점원 JUSTIN DURANT가 사고가 난 8번 창 해치커버 위에 올라가서 현장을 보고 있을 때 터미널 측 육상직원도 사다리를 걷어 올려놓고 육안 검사를 위해 본선에 내려왔다가 살펴본 후 다시 육상으로 올라가 사다리를 완전히 들어 올리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윽고 사다리가 철거되어 본선에서 해치커버를 닫아야 하는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위에 올라가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와야 하므로 우리 선원들은 줄줄이 해치 코밍을 밟고 곡예를 하는 듯이 갑판으로 저마다 내려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사무실로 들어와야 하는 대리점원 Mr.D (JUSTIN DURANT)도 내려와야 하는데 그는 모든 선원들이 떠나는 뒤를 따르려 하지 않고 무어라 컨트롤 레버를 잡고 있는 본선 선원에게 이야기하며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모습을 처음 볼 때에는 <저 친구 왜 안 내려오고 저러고 있어? 위험하지 않아?> 하는 생각에 답답한 심정으로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윽고 컨트롤 레버를 잡은 선원이 해치카버를 다시 움직여 완전히 열어주어 올라갈 때 이용한 스텐션에 고착되어 있는 계단 손잡이와 해치 폰툰에 붙여진 계단 손잡이로 만들어진 층계가 다시 제대로 맞춰지게 해주니 그때에서야 그곳을 이용하여 맨 마지막으로 신중하게 조심하면서 갑판으로 내려서는 모습을 보이었다.

나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림은 잘 보이는 마치 무성영화의 활동사진을 보는 듯한 위치인 발라스트 컨트롤 룸의 창을 통해 그런 모습을 내다보며 한참을 그의 행동에 대한 감탄을 해야 했다

결국 안전하게 만들어진 정식의 통로를 이용하여 내려간다는 안전의 원칙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평상시 우리들이 보기에는 어찌 보면 답답하기 조차한 융통성 없는 수칙 준수를 위해 이미 해치 커버를 조금 움직였기 때문에 어긋나 버린 층계를 다시 나란히 맞추도록 폰툰 여닫이 레버를 작동하던 우리 선원에게 요청하여 층계의 손잡이들이 제대로 이어지게 해 놓은 다음에 천천히 갑판으로 내려섰던 것이다.

이는 안전에 대한 감각이 몸에 밴 생활을 해온 그의 습관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되며 어찌 보면 안전 불감증이 팽배해 있는 우리 선원들이 모인 가운데 한 번쯤은 예를 들어 교육적으로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는 사항인 것 같다. 이런 태도야말로 안전을 몸에 배이게 하고 살아가는 기본적인 당연한 태도가 아닐까?


안전을 바라보는 그들의 그런 태도에 부러운 마음이 든다. 전 선원을 상대로 기회를 만들어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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