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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청소와 비행기 출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바다

by 전희태


JJS_2889.JPG 갑판 청소를 깨끗히 마친 모습


어제 새벽녘에 예정했던 짐을 전부 싣고 다림풀베이를 출항하였다.

강제 도선구가 아니어서 도선사는 따로 태우지 않고 자력 도선으로 하루 낮 밤의 북상길을 달려 오늘 새벽에 PALM PASSAGE까지 모두 빠져나왔다.


이제 CORAL SEA로 들어서 갑판에 떨어진 석탄의 찌꺼기를 청소해 내도 될 만한 해역에 들어섰기에 늦은 오전부터 해수를 끌어올려 전 갑판을 씻어내는 갑판 청소를 시작하였다.


화물을 별로 많이 흘리지 않고 선적을 하였기에 씻어내야 할 석탄가루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꼼꼼히 쓸어내기 위해서는 하루가 걸리는 일이다.

오후에도 열심히 해수를 올려 씻어 내리고 있는 것을 브리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접근하는 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어온다.


배 안에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여러 가지의 펌프나 기계가 있어 어떤 때는 그 회전 소리들이 비행기가 접근할 때 내는 소리처럼 들리는 경우도 있어, 또 그런 소리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두리번거리는데 희끗하니 오른쪽 윙 브리지 위로 비행기 동체의 그림자가 스치듯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진짜 비행기가 본선의 뒤쪽에서 옆으로 바짝 다가와 큰소리를 남기며 지나쳐서 앞쪽으로 날아간 것이다. 기체에 그려진 마크를 확인하니 호주의 COAST GUARD 비행기이다.


아차! 여기가 화물 찌꺼기 투기를 금지하는 해역이라서 우리를 적발하러 나타난 비행기인가? 하는 걱정부터 들어 즉시 기관실에 연락하여 해수 펌프를 꺼주도록 지시를 하고 갑판 위의 작업원 들에게도 당장 작업 중지할 것을 스피커 방송으로 지시한다.


그동안 저만큼 앞쪽으로 갔던 비행기가 다시 원을 그리어 돌아서더니 우리들 머리 위로 접근하여 한 번 더 살피는 모습이었지만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한 시 방향인 앞쪽으로 날아가서는 어느새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이상한 마음이 들어 오늘의 갑판 청소 과업은 여기서 끝내리라 작정하면서도 미심쩍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호주 정부가 발행한 팸플릿을 꺼내어 자세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화물 찌꺼기 처리사항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설명한 것을 새삼 찾아내어 들여다보니 그레이트 배리어 산호초(Great Barrier Reef) 부근에서 육지 쪽의 해역은 모두가 투기 금지 구역이고, 육지와 3 마일 이내에 드는 해상도 마찬가지의 규정이 적용됨을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작업하던 곳은 그런 규정의 거리를 훨씬 벗어난 곳이기에 청소를 해도 괜찮은 해역이 맞다. 마음을 다시 바꾸어 끄게 했던 해수도 올려주도록 기관실에 연락을 하며 즉시 작업 재개를 지시하였다.

육지는 보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100~200마일 안팎의 거리를 둔 해역을 항해할 때 갑자기 나타난 비행기가 본선에 접근하는 행동을 보이는 건 사실 별로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배와 관련된 좋지 않은 일의 현장 확인 겸 증거를 수집하려고 나타나서 바로 머리 위를 날아가며 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항해 중 비행기의 접근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본선이 일종의 범법행위의 현장에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켜 설사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미심쩍은 마음은 조심스레 주위를 한 번 더 살펴보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예전에 그런 비행기와 얽힌 악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본선이므로 더욱 조심스러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식의 과민 반응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날아갔다가 되돌아 왔던 부근으로 다시 날아간 비행기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고 그냥 사라져 버린 것으로 보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또 다른 일이 있어서 나타났던 모양이다.


의심에서 풀려난 심정은 <좀 전 머리 위를 지나쳐 갈 때, 손이라도 흔들어 줄 걸!> 하는 엉뚱함을 떠올리며 그 쑥스러움에 헤벌쭉한 미소마저 짓는다. 큰일은 없으리란 안도감이 불러들인 아이들 같은 선원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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