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검사

선원수첩을 뒤적이다.

by 전희태
090425 008.jpg 사진의 왼쪽이 선수쪽 인 전부마스트에 저녁이 찾아오고있다.


우리 배가 지나 온 약 200 마일 뒤쪽 해상에서 열대성 저기압이 열대성 폭풍으로 크고 있어 내일쯤이면 아기 태풍이 되면서 기상도 상에 이름을 드러낼 것 같다는 예감을 갖게 한다.


녀석의 진로가 북서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고 발표되고 있지만 혹시 북동쪽으로 틀어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잠자리에 들어선 후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면서도 또 체크하는 마음 되어 하룻밤을 지새우듯 보내고 있었다.


동틀 녘이 되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나 펼쳐 본 커튼 바깥의 날씨가 아직은 태풍의 발생이나 움직임에 별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순탄하게 잘 달리고 있는 현실로 확인되니, 계속 조리던 마음을 접어주며 안도감을 찾았다.

하기야 오늘 저녁 8시경이면 일본의 규슈 남 서단의 섬들 사이로 들어서게 되니 집에 다 온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긴 하다


그렇지만 태풍이란 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힘이 부풀어 오르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이라 마지막 입항 때까지도 마음 턱 놓을 수 없어 계속 주시하는 것이다.


무선 검역 신청의 전문을 광양 검역소로 보내 놓고 기다리는 중에 본선 담당 K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광양 입항 시간에 변화가 있는지를 물어온다. 오히려 당겨지어 14일 저녁 10시면 도착하겠다고 대답해주니 자신은 오션 P 호의 15일 포항 출항까지 보고 난 후 방선하겠단다.


오션 P호는 지난번 연가로 쉬고 있었을 때 책임 선장으로 미리 내정되어 입항을 기다리고 있었던 배였다.

당시 먼저 국내에 들어와 있던 지금 우리 배의 선장이었던 A선장이 급한 집안 일로 즉시 하선 요청을 해왔고 마침 연가 중이던 내가 사명으로 연가를 접고 A선장을 교대해 주면서 한 항 차만 승선하기로 했던 배였다.


그렇게 한 항차 만 타기로 했던 내가 그냥 눌러앉아 책임 선장이 되면서 오션P호는 자연스레 A선장이 내 대신 이번 항차에 승선하여 나와는 서로 배를 바꾸어 타게 되는 역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배들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A선장이 잘 승선했는지 인사치레로 물어봤다. 헌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매 2년마다 실시하는 정밀 신체검사에서 A선장의 간 GPT 수치가 높아 정상적인 수치로 조절될 때까지 승선이 보류된 상태라는 대답이 전해진 것이다.

나보다 십 년 후배이지만, 송사가 걸린 집안일에 말려들어-연가 되기 전에 나와 조기에 교대한 점도 그 때문이었다는 소문이었다.

모아 놓은 재산도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진 A 선장의 입장이 매우 힘들게 생각되어 빠른 쾌유 후 얼른 승선하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주며 통화를 끝내었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하게 된 집안일로 인해 그런 건강의 이상수치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A선장의 경우를 심각히 짐작해 본다. 아울러 그 간의 너무 무심하게 지나치며 도외시하던 내 건강습관을 되짚어 보며 나의 신체검사를 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 확인하려고 선원수첩을 펼쳐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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