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쳐내야 하는 파도처럼
엊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우리 뇌의 세포를 신진대사 시켜 치매 치료를 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새삼 받아들이고 싶은 좋은 뉴스라고 생각했다.
마침 가족 방선으로 배를 찾아온 아내가 그동안 집안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어딘가 비정상적인 어머니의 행동을 언급하던 중에 듣게 된 뉴스였다.
어머니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제일 먼저 가졌던 나의 반응은 어머니와 아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엄정한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며 집안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맏아들의 숙명적인 인식의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 우리 어머니께서도 이제 치매 끼를 보이시는 건가? 하는 전언에 점점 더 섭섭하고 슬픈 아쉬움과 노여움 등 복잡한 감정들로 속을 끓이던 중에 듣게 된 텔레비전 뉴스였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애들까지 끼어든,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든 일의 발단은 어머니께서 집안에서 돈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단다.
그동안의 전말을 들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내 생각은 혹시 노인네의 아집이 발동된 건가? 아니면 치매의 전 단계에라도 들어선 비정상적인 사고 능력 때문인가? 하는 우려였다.
한편 그 일에 반응하여 대처한 아내의 방법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누가 돈을 가져갔는가를 밝히려고 따진 것으로, 그때의 속이 뒤집히는 듯싶은 마음의 피폐함이 제일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결코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는 믿음을 가지며 취한 행동이긴 하지만, 건강이 완전치 못한 아내의 입장이니 괜스레 애처로움만 더해준 셈이다.
결국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처한 아내의 태도에서 어쩔 수 없는 고부간 갈등도 감지되지만, 아이들도 답답한 마음과 모두들 제 나름의 설음까지 곁들여지니, 같이 울면서 그 시간을 보내게 되었단다.
그런 와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막내가 자신이 벌은 돈에서, 할머니가 잃으셨다는 액수만큼의 돈을 내어 놓은 후, 잃어버린 돈을 찾아낸 듯이 전달하였을 때, 어머니는 그 돈을 꼭 움켜잡으시며 가지시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된 모양이다.
아내의 일방적인 이야기로서, 어머니의 진짜 속내를 직접 전해받은 것도 아니니 우선은 덮어두고 다른 면으로의 가능성도 유추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한발 물러서고 싶은 것은 나의 어머니는 결코 그런 어머니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지키고 싶은 어쩌면 한쪽으로 치우치려는 내 마음 때문인 것도 같다.
어머니는 그 돈을 긴히 쓰실 곳이 생겨서 찾아보았는데, 진짜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보관해 두었던 곳을 잊어버려 찾지 못해서 안달이 나셨거나, 하여간 그렇게 짜증에 얽혀 들면서,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보였다가, 그만 거기에 발목이 잡혀, 계속 우겨야 할 상태로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종종 생뚱스러운 고집을 부리시는 걸 여러 번 본 적도 있으니, 어쩌면 노인네 특유의 아집이 가미된 안 해도 될 고집을 밀고 나가다가 일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로 흘러 보냈던 게 아니실까? 어쩌면 이런 내 유추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맞았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내가 우려하는 제일 큰일은 이런 경우가 쌓이게 되어 가족 간에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서로를 귀찮아하며 보기도 싫어지는 그런 일이 발생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이다. 겁부터 덜컥 났지만 우선 그런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을 우기면서 한숨 돌려 본다.
아내에게 고부간의 갈등 식으로 이런 일을 풀지 말고 어머니의 상태는 치매에 가까워지는 노인병의 초기 증상이라고 대처하여, 괜스레 심적인 스트레스까지 덤으로 받는 이중적인 아픔은 갖지 말자는 말을 하면서 아내를 다독여 주었다.
그런 이야기는 평소 누누이 하고 있던 거지만, 감정이 그렇게 이성대로 흘러주지 않고 그야말로 감성으로 흐르면서 굉장한 스트레스가 몸을 덮치게 되어 진짜로 가슴과 속이 쓰린 큰 아픔을 이번에 경험했다는 아내이다.
아이들도 역시 할머니에 대하여 그동안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전래의 웃어른과 아랫사람 간에 존재하는 좋은 유대감이나 가족 간의 튼실한 정마저 흘려보낼 만큼 힘들었던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정을 비켜서시는 듯 보여준 할머니의 비상식적이고 야속한 노인네의 아집에 파묻힌 행동에 대해 이해 못하는 미움만이 우리 가족 간에 커진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되기도 한다.
나중 집에 가서 아이들과 대화를 좀 나누어 최소한 할머니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그런 행동을 하신 것이 아닐 거라는 점, 그러므로 그 처지를-노인병을 앓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점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 줄 것과 또 앞으로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할머니와의 가족공동체 생활을 하자고 한 번 더 강조하기로 작정을 한다.
한바탕의 소동을 벌이고 난 후, 아내는 그대로 감정을 삭이기가 힘들어 동생 내외를 일부러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힘든 마음의 속내를 보여 주었는데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생들은,
-엄마가 치매에 드신 게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입빠른 소리 같은 반응이었지만 나도 아내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었을 때 첫 감정이 어느새 어머니에게도 <치매가 찾아오는 시기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었으니......
역시 아들이란 경우의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만, 어차피 어른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큰아들의 입장이다. 매사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건강마저 해치는 한을 맺는 스트레스는 피하는 쪽으로 살면서, 원만한 해결책들을 거의 다 아내의 몫으로 넘기려 하는 이기심에도 제동을 걸어야겠다.
어떤 그럴듯한 말로 분식하더라도, 그게 말 같이 쉬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나도 깊이 이해하고 아내를 도와야 할 주역으로 나서야 함을 절감한다.
모처럼의 귀항에서 만나지는 가족 간의 사연이 잠깐 복잡하게 꼬였던 점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그것이 인생행로이고, 그분은 당신이 참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인 -나-를 낳아주신 내 어머니이신데....
여보! 나는 언제나
당신의 형편을 남보다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면서
살겠어요. 파이팅!!!
별리의 생활도 서럽거늘,
모든 걸 혼자 해결하느라
힘들어하는 당신이다.
내 반쪽 그런 아내에게
언제고 들려주고 싶은
내 마음의 응원구호
여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