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항 후의 바쁜 일과를 보내며
지난 항차 포항에 머물렀을 때 집에 들르지 않고 출항했던 일을 어머니께서 매우 섭섭하게 여기고 계신 것 같다는 아내의 전언에 이번 항차에는 우선 집에 가는 일부터 하기로 작정하여 입항 후 첫 아침을 맞는 아홉 시에 통차를 부두의 배 옆으로 오도록 요청하고 일과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오늘이 광양 장날이니 민물 게를 사서 간장게장을 담가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아내의 청부터 우선 들어주기로 했다. 이 청이 아내의 입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 중 외국에 살고 있는 특별한 사람에게 보내려 하는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흔쾌히 동조한 것이다.
우선 광양에 살고 있는 처제에게 연락하여 광양 시장에 같이 가기를 청하도록 하였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온 통차를 아내와 함께 타고 상륙을 한다. 처제 집에 들러서 광양 장날에 대한 간단한 안내 상황을 듣고는 장터를 찾아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시장을 스치듯 지나치면서도 이미 우리의 구매의욕에 합당해 보이는 양의 민물 게라고 속으로 점찍어 놓은 좌판이 있었다.
시장을 돌던 발걸음이 어느새 흥정하리라 맘먹었던 좌판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어느 중늙은이 아줌마가 지키고 있는 좌판 앞에 섰다.
-여기 있는 게 전부 얼마입니까? 흥정을 시작했다.
그런 식의 흥정은 생각지도 않았던 듯, 그 아줌마는 좀 머뭇거리다가 값을 불렀고 우리도 그 정도면 되겠다고 여기어 당장 사고팔기가 합의되었다.
그런데, 막상 포장을 하는 과정에서 그 아줌마의 심중에 값을 더 받을 수 있는 것을 너무 싸게 팔았다는 얼토당토않은 느낌이 들어섰던 모양이다.
아줌마는 처음 불렀던 돈에다 조금 더 값을 올린 가격을 덧붙여서 새롭게 가격을 책정해 달란다.
돈을 더 받아 보려는 아줌마와 한참을 옥신각신 하였지만, 아내도 더 이상 양보 없이 강력하게 이야기하며 아줌마가 정해줬던 가격을 고수한다.
야금야금 팔 것을 한 번의 떨이로 팔게 된 것이 오히려 싸게 판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키워내어 게를 담아 주면서도 자꾸 이천 원이라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아주머니였다.
나는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이천 원을 만지작거렸는데, 눈치챈 아내가 얼른 처음 불렀던 대로의 값을 치르며 나를 떠밀듯이 밀쳐내어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고 돌아서게 만든다.
이제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들었으니 빨리 처제의 집에 들러 게장을 담그면 될 터인데, 이번에는 그간 아내가 계속 노후에 가서 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던 옥곡이란 곳에 가보기로 하잔다.
기왕에 나서는 길, 돌아 볼일을 겸 해서 그곳에서 게장도 담그기로 작정하고, 다시 플라스틱 통과 간장까지 사들고 택시를 타게 되었다.
포철에 근무하다 명예퇴직을 하고 지금은 집을 지어 팔고 사는 일을 한다는 처제네가 광양 와서 알게 되어 사귄 이웃 친지 분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손수 운전한 자가용 찝 차로 나타나더니 우리를 태운 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데려다준다.
제법 경사가 가파른 악산이지만 양지바른 산기슭에 허름한 구옥의 집과 떨어져 있는 외양간을 고쳐 부엌으로 만든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나의 퇴직 후 모습을 슬며시 그곳에 대입해 본다.
이곳에서 제일 관심을 끈 것은 들어오는 길가와 나란히 흐르며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를 품고 있는 냇물과 집 옆에서 펌프로 끌어올린 지하수의 시원한 맛이었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그분은 구수한 사투리로 계속 설명하는 일을 즐기는 듯싶었는데 문득 그 목소리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이와 너무나 같아 보인다는 느낌을 받으며 잠깐 생각이 옆으로 샜다.
그 어떤 이가 누구인지 얼른 생각이 안 나더니, 한참 만에 S항 대리점의 J사장이라 찾아냈다. 이야기하는 목소리나 톤과 심지어는 모습까지도, 흡사하게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을 찾아 떠올리느라고 한참 동안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러 들으며 골몰하게 생각에 빠져든 실례를 범하게 되어 나중엔 설명과 사과를 하는 해프닝까지 가지게 되었다.
S시 대리점의 J사장은 내가 퇴직을 한 후 자기네 동네에 와서 노후를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농담반 진담을 하던 사람이다.
어찌하든 그런 곳에 살려면 제일 먼저 갖춰야 할 일이 운전면허를 받고 차도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나는 아직 까지 그 두 가지를 다 못 가지고 있다. 귀농을 막연한 꿈처럼 간직하고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호 봐도 쑥스러움이 앞서는 현실이다.
집 구경도 잘 하였고 점심까지 지어먹으며, 열심히 담근 간장게장까지 싸들고 집으로 향하려고 다시 그분의 지프차를 타고 광양 버스 터미널로 발길을 돌렸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차표를 사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배에 있는 일항사로 부터 온 전화다.
본선을 방문한 해양 경찰의 PSC 임검에서 유수분리기의 15 PPM 준수 부분에 잘못된 상황이 발견되어 수정 지시를 받게 되었다는 연락이다.
문제점을 해결키 위해 내가 바로 배에 들어가야 하겠는가를 물으니 기관장이 재선(在船)해 있으므로 나의 출석까지는 필요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좀 안심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대로 고속버스를 타기로 한다. 그리고 최종으로 나오는 결과를 알려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 중도의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 핸드폰이 또 울렸다. 점검에서 지적된 사항을 해결하는 수리 등의 모든 본선에서의 조치를 끝내고 재점검하여 무사히 통과 해결되었다는 연락이다.
집으로 가는 서울까지의 여정 중에서 혹시 중간에 연락을 받아 다시 본선으로 향해 돌아서야 하는 건 아닐까? 의문과 걱정스러움에 마음 졸이던 고민이 해결되니 한결 편해진 마음 되어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선원들이 국내에 입항하였을 때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나 형편은 이렇듯 꼬일 수 있는 형편들을 잘 풀어내질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