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흔들어 주는 바다를 건느러면
스무 엿새의 달빛만으로는 판별하기가 어려워 못 보고 지나쳤던 광경인데 어느새 스며들듯 찾아온 여명의 순간에 다다르니 갑판과 외판이 만나는 가드레일이 서 있는 아래쪽 갑판 위에 희끗거리며 내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보였다.
버려진 휴지나 쓰레기로 보기에는 어딘가 깨끗해 보인다. 아직도 모두를 확연히 판별하기에는 어둠이 남아 있어 갑판을 더 돌아 좀 더 시간이 지나 밝은 상태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갑판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 6분 여를 몇 번 더 지난 후 이제는 제법 분별할 여명 속에서 자세히 살펴본 그것은 바닷물이 하얗게 결정을 이뤄 소금기로 꽃 피워 놓은 작은 염전이다.
그간 며칠 새 간단없이 흔들어 준 배의 요동에 따라 갑판으로 쏟아져 나오던 발라스트 탱크 속의 해수가 뜨거운 한낮의 열기에 물은 증발되고 소금기만 무겁게 남아 하얗게 결정의 꽃을 만들어 놓은 것이 밝아지는 여명 속에 유난히도 희게 빛나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노동을 하면서 힘들어할 때 땀은 절로 쥐어짜듯이 흘러나오고 그 땀이 어찌 뜨거운 뙤약볕에 노출되어 물기는 날아가고 소금기만이 얼굴에 남아 허옇게 만들어 주는 경우를 우리는 시막 지역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의 현상으로 인도양의 중간쯤에 닿도록 쉼 없이 파도와 함께 뜀박질하는 모습으로 달려온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배도 발라스트의 물을 마치 땀 마냥 쏟아 내었고, 그 물기가 갑판의 끝자락 여기저기에서 햇볕에 바래지며 하얀 소금 꽃을 피워낸 것이다.
어느새 다섯 바퀴 째 갑판을 돌고 나니, 땀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데, 내 발걸음을 받쳐 주고 있는 거대한 몸뚱이의 대우 스피리트호도 땀을 짜내듯 발라스트의 해수를 넘치게 내어주던 모습에서 이제는 너무 많이 물을 쏟아 내었기에 탱크 내부의 수위라도 낮아졌는지 한 번씩 흔드는 횡요에도 더 이상의 바닷물은 나오 지 않고 있다.
아니 롤링의 강도가 그리 크지 않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이 쏟아져 나오던 에어벤트에서 해수가 나오는 대신 씨 이익-씩 바람 소리만을 한 번씩 기우는 선체 운동을 따라 내고 있다.
갑판 귀퉁이 이곳저곳에 하얗게 모여 있는 소금기를 보며 걷다가 쭈그려 앉아 소금 결정체를 손가락으로 떼어 내어 입으로 가져가 맛을 본다.
제 붙어 있는 자리에서 잘 떨어지지 않던 결정체이지만, 떼어져 입에 들어오는 순간 소금은 제가 무슨 고진감래라도 가르쳐주려고 그러는지 짜고 쓴맛까지 한꺼번에 안겨준다.
쓴 입맛을 다시며 단맛을 찾아보다 그냥 침을 내뱉고 삼키는 거로 위안을 삼는다. 새벽의 훈훈한 대기 속을 이제는 땀 대신 씩씩한 콧김을 내뿜으며 잘 달리는 거대한 거인 같은 믿음직스러운 모습의 대우 스피리트호의 몸체를 흐뭇한 마음으로 둘러보며 걷는 내 발걸음이 제법 빠르게 걷고 있다. 발아래 어둠이 걷힌 탓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한 하루이기를 빌면서 아침 운동을 열심히, 기쁘게 치러가고 있는 이곳은 인도양의 한가운데이지만 늘 만나서 생활하고 있는 대우 스피리트호의 갑판 위라는 것이 더욱 다정다감하여 나를 마음 놓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