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들의 감정 기복

날씨를 닮아간다는 뱃사람들의 감정 기복

by 전희태


%B9%B0û%BC%D222(2427)2.jpg 깊이 20여 미터가 넘는 선창 내. 소방 호스로 선창의 격벽을 때리는 물줄기가 만들어 준 분무에 걸쳐진 품안으로 들어 온 무지개.


엊그제, 이미 닷새 째나 선창의 물청소를 계속하고 있던 때였다.

-홀드, 홀드, 여기는 갑판, 감도 있어요? *홀드=선창(船艙)


현장의 책임자로서 갑판장이 HATCH COAMING에 기대어 선 채, HOLD 안을 내려다보며 선창 안에서 작업을 하는 부원들을 WALKIE-TOKIE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홀드 안에서 청소작업을 하고 있던 조타수가 응답을 하고 나온다.

-갑판, 갑판. 여기는 홀드, 감도 있습니다.

-어, 지금 하시는 작업, 위에서 떨어지는 석탄 찌꺼기 머리에 맞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안전에 위험한 요소를 발견하여, 그 일을 지적하여 사고 없이 작업을 하도록 말해 주려고 갑판장은 불렀던 모양이다.


밑에서 일하던 조장으로 대답하고 나왔던 조타수가 너무 잔소리가 많다고 느꼈음인지 한참을 대꾸 안 하고 있더니,

-여기는 홀드, 잘 알았어요.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볼멘 목소리로 들린다.

그 말투의 뉘앙스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투의 좀은 기분이 상한 심정이 내비치는 언동이다.


잠깐 보이지 않는 두 사람 간 감정의 기류를 감지하면서, 그 둘을 비교해 본다. 직책이야 갑판장이 위이지만, 나이는 조타수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평소 그런 저런 관계로 어딘가 보이지 않는 알력이 둘 사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왔던 사이의 두 사람이다.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도 싶지만, 그렇게 뛰어 들음이 결코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라고 여겨져 참기로 하면서, 계속해서 그들의 대화는 들리는 대로 두었다.

잠시 더 말이 오고 갔으나 더 이상의 감정 대립은 스스로 자제하는 듯, 작업은 다시 재개되면서 워키토키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윽고 중간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작업자들을 위해 조리수가 주방에서 준비해 가지고 나온 시원한 마실 것을 선창 내로 내려 준다며 받을 준비를 하라는 갑판장의 목소리가 워키토키에 울린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금껏 어깃장을 놓는 것으로 보이던 조타수의 목소리가 일순 반가움에 젖은 환한 목소리가 되어,

-예엣! 알았습니다. 응답한다.

휴식을 즐기려는 심정을 여실히 들어 내보이는,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애의 기쁨에 찬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음색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살아간다는 뱃사람들의 모습을, 기쁜 마음을, 그대로 표출시키며 응답하는 걸 듣게 되니, 나도 좀 전 그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난기류는 잊어버리고 덩달아 웃음 띄운 마음이 된다.


그리고 문득 둘러본 주위 환경인, 하늘과 바다의 모습도 밝고 환하게 개인 날씨로 바람도 파도도 없는, 그야말로 <서울 사람들 배를 탈 욕심을 낼 날씨>로 항해 중임을 새삼 알아챈 거다.


오늘 같은 날이 뱃사람들에겐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근무할 수 있는 그런 최상의 주위 환경이 주어지는 날들 중 하루라는 걸 깨우친 거다. 제 먼저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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