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벤트 볼 임시 철거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우울한 항해

by 전희태


SNB10037.JPG 볼이나 디스크를 품고 있는 발라스트 탱크의 에어벤티레이터


Ȳõ2(3045)1.jpg 황천 항해중 갑판 위로 올라 왔다가 선외로 빠져 나가는 해수.



지난달 18일 광양을 출항한 후 그동안은 그런대로 평탄한 항해를 해왔다.

이제 마다가스칼 섬의 먼 남동쪽 바다를 지나면서, 10시 방향으로 조금씩 옆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7번 발라스트 탱크의 에어벤트를 통해 트림과 딸꾹질 같은 큰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하고 있다.


더욱이 기분 나쁜 것은 선체를 탈탈 털면서 하우스 전체를 흔들어 주는 요동이다. 공선으로 항해 중 파도타기를 할 때에, 파도와 맞서던 선수부가 한 번씩 파두(波頭)에 쥐어 박히며 나타나는 그 움직임은 불길한 생각마저 들게 하는 기분 나쁜 소음을 가진 선체 운동이다.


배가 듬직한 몸피에 비해 이렇게 촐랑거리듯이 움직이는 모습은 평소 큰 배라고 자랑하며 의기양양하던 자부심마저 짓밟아 주는 데, 자연의 위력 앞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일이다.


나빠져 가는 기상이 걱정되어 그간 열심히 잡아보려고 노력했던 남아공화국의 기상 팩스였건만, 결국 접속하지 못하고 그들의 기계가 고장이 나서 발송을 중단 중이라는 팩스만을 접수했다.

그동안 어딘가 떨어지는 정보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기피하고 있던, 케냐에서 나오는 기상 방송이라도 받아 보기로 마음이 여리어져 있었다.


어설퍼 보이는 기상도이긴 하지만, 아프리카 남단에 고기압이 걸쳐있다. 그게 빠져 지나치면 날씨는 다시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상도이다.

못 미더운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기상도의 그림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니 참고하기로 한다.


고기압의 접근으로 인한 기압골의 영향이라면 아직은 파도가 좀 더 있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하면서도, 그 역시 마음의 위안이 되는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질 것이라 믿어 보기로 한다.


아프리카 남쪽 해안을 따라 흐르는 해류와 몬슨(계절풍)의 바람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이상한 삼각파도의 발생이 우려되는 해역이 며칠 내 거리로 가까워졌음을 해도에서 확인하며 브리지를 내려온다.


에어벤트를 통해 토해지는 거인의 숨소리는 여전히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점심 식사를 할 때에도 그 소리가 간간히 식탁까지 찾아오니 기관장이 그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하여 얼굴을 찌푸리며 요청한다.


예전 캐나다를 향해 북태평양을 발라스트만으로 공선 항해하면서 이번 같은 경우를 더 심하게 당했는데 아예 에어벤트를 분해하여 그 안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볼을 제거해주어 소리가 작아지도록 조치한 적이 있다며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어떻겠는가를 묻어온 것이다.


원래 그 볼은 황천 항해 시 파도로 갑판 위에 올라온 해수가 에어벤트를 통해 발라스트 탱크 내부로 역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안전장치의 하나이다. 함부로 분해하여 꺼내거나 없애 버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그걸 뽑아서 소리가 나지 않게(깨어짐의 방지) 해야겠다는 의견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 소리가 밤새 잠을 설치게 할 만큼 시끄러울 것도 예상되지만, 사실 그것 보다도 더한 이유는 그 볼이 너무 심하게 제 구실을 하려고 오르내리다가 깨지기라도 하면 당장 입항하여 받을지 모르는 PSC 검사에서 majer item(*주 1)으로 지적당하는 큰 낭패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 입항 전에 다시 원위치로 복원시켜 완벽한 대비를 한다는 조건을 붙이어 에어벤트 볼의 임시 철거를 하도록 허가했는데, 저녁때 작업이 끝나고 보니 볼은 이미 깨져 있어서, 어차피 입항 전에 개방하여 바꿔 넣어야 할 운명이었다.


*주 1 : PSC 검사에서 지적받는 사항중 Major item으로 지적되면, 그 사항을 그 항구 떠나기 전까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면 출항이 허가되지 않는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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