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DANHA BAY를 처음 찾으며

새삼 처음 찾은 나라 같은 마음이 든 방문.

by 전희태
IMG_9650(6118)1.jpg 40년 가까이 집을 떠나 있었지만 변함없이 집 마당의 감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40년을 넘기어 배를 탔으면서도 아직도 항구를 찾아들어갈 때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며 찾아들고 있다.

특히 그 항구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곳이면, 더욱 심한 긴장감에 휩싸인 채 모든 일을 처리하니까 밥맛도 별로 없고 잠도 그르치기가 십상이다.


예전 담배를 끊기 전에는 이런 때면 세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며 브리지를 지키곤 했었는데 요즈음은 그건 아니다.


SALDANHA BAY라는 이름의 CAPE TOWN 위쪽(북쪽) 약 60 마일 되는 곳에 있는 남아공화국의 한 항구를 27일이 걸린 항해 끝에 찾아오면서도 그런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술 더 떠서 회사로부터 이곳의 PSC 점검에 대비하여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줄 것을 요청하여 오니 그만 밥맛마저 떨어질 정도의 스트레스까지 찾아온다.

아직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후진국이라 얕보는 마음도 있었기에, 그런 곳에서 업신여김 받아가며 PSC 점검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하는 억울함(?) 같은 심정이 들면서 더욱 약이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6.25 사변으로 풍전등화 백척간두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서있었을 때 유엔군의 이름으로 처음 병력을 파병한 국가 16개국 중에 아프리카에선 에티오피아와 함께 참전해 준 나라였으니 결코 우습게 볼 나라는 아닌 것이다.


결코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 나라에서 흑백 인종 차별정책을 쓰던 시절이 있어 모든 권력을 백인들이 잡고 일을 처리해나갔으며 이때의 흑인을 제외한 민도는 굉장히 높고 부의 축적도 큰 나라였다.


유색인종에 대한 인권은 무시되었지만 다른 분야는 거의 선진국에 드는 나라였다는 생각도 절로 들게 하니 너무 후진국이라고 무시하려는 현재의 생각은 어쩌면 일방적인 폄하로, 내 자격지심 인지도 모르겠다.


항구의 입구에 VTS(VESSEL TRAFFIC SCHEME) ZONE이 설정되어 있고 그곳을 드나들 때에 PORT CONTROL 에다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하는 항목과 장소를 깨알 같이 늘어놓은 수로 도지를 다시 참조한다. 이는 자연보호를 위한 조치이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그럴듯한 일을 시행하며 목에 힘을 주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내가 혼자서 이들을 평가절하 식의 눈초리를 갖고 대해서이지 사실 이 나라를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든지 크게 앞서 나갈 수 있는 국토와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내가 생각하는 패턴은 역으로 자기 자신이 약하니까 발생되는 그런 반사적인 발로에서 남을 우습게 보려고 드는 그런 나쁜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잠깐 흠칫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라라고 접어주며 생각하기로 작정을 하고 입항을 하였는데, 대리 점원이 세관 사항 검역 등 모든 일을 대행하여 끝을 멋지게 내주는 그야말로 서류 간소화의 극을 달리는 간편한 입항 수속으로 나를 맞이 해준다. 그렇게 하며 4 만 톤의 철광석 선적을 끝내고 오늘 밤으로 출항을 시키려는 예정이란다.



다음 항구인 리챠드 베이의 대리점에서는 본선의 ETA인 19일 오후 도착이란 것을 가지고, 24시간 내지 36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며 안달하는 전보를 보내오고 있다.


하지만 오늘 밤 출항이라면, 19일 오전 열 시쯤의 ETA는 가질 수 있으니 기다림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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