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잔소리꾼이 되어가는 과정

어쩔 수 없는 참견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by 전희태
C0(6354)1.jpg 육지에서 내려다 보는 희망봉의 모습은 이렇지만,(인터넷에서 퍼옴.) Land fall로 바다에서 오랜 항해 끝에 만날 때는 섬 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저녁때쯤이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서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남겨둔 위치에서 열심히 목적항인 SALDANHA BAY를 향해 달리고 있는 새벽이다.


아직 Land fall(주*1) 되어 육지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싱그러운 육지의 냄새가 코끝에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스멀스멀 들어서고 있다.


배의 모든 갑판이 이슬로 흠뻑 젖어 시원함마저 풍기며 아주 상큼한 우리의 가을날 아침 같은 환한 동이 트려고 준비하고 있다.

심호흡을 즐기며 갑판을 누벼 가는데, 배의 선미 쪽 갑판의 가장자리 Scupper(물이 흘러내리도록 뚫어 놓은 개구부) 부근에 버려진 캔 맥주용 종이 상자가 눈에 뜨인다.

어제저녁 식사 때 맥주가 나왔으니 아마 그때 사용한 맥주 캔을 담고 있던 박스 이리라.


문제는 그 박스가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맥주를 한 캔씩 빼어 내도록 커버를 비닐 포장으로 씌워 주고 있다는 점이다.


맥주를 모두 꺼내 먹고 쓰레기로 처리할 때, 그 상태대로 버리면 엄밀히 말해 비닐류 쓰레기로 분류되므로, 절대로 그대로는 바다에 함부로 투기할 수 없는 물건이 되는 거다.

그런데 그런 쓰레기 투기 규정을 어긴 채 쉽게 바다로 버렸는데, 아마도 배가 달리는 때문에 만들어진 바람에 휘말리어 다시 배위로 되돌아왔다가 내 눈에 뜨이게 된 모양이다.


쓰레기 분리수거 및 투기 가능한 장소와 쓰레기 종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설명해 주고 실천하도록 알려 주는 교육으로 입이 닳을 정도로 했다.

그랬었건만 교육의 효과는, 집합시켜 놓고 말하던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멋대로 쓰레기를 버리는 신경을 지닌 선원들이 아직도 내 주위에는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야속하기도 하고, 그런 무신경한 태도에 화도 나니,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마음에 그 쓰레기를 들고 버렸음직한 사람을 찾아 내 다시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부터 이미 나의 잔소리꾼이 되는 길은 절로 열리는 셈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말이 많아지고, 무엇에나 간섭을 하며 잔소리를 하는 경향으로 흐른다고 믿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나이 든 사람이 말하는 모든 것은 잔소리이고, 들어서 별 보탬이 안 되는 일인 양 매도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며 배우고 느낀 경험이 아무렇게나 함부로 취급해도 좋을 그런 싸구려 경험이 결코 아닐진대, 우리는 그들의 말에 경청하며 가능한 따를 수 있도록 양보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 태도라고 강변하고 싶은 마음이다.


자신은 평생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만이 옳고 세상 모든 나이 든 사람의 이야기는 잔소리이고 필요 없는 일로 간주하며 살아간다 치자.

그 자신도 언젠가는 나이 드는 진리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어린 사람들한테 당해야 할 운명을 미처 생각 못한 짧았던 안목을 뒤늦게 후회한들 어찌하랴.


사회의 구조나 삶의 패턴이 너무 급격히 변화되며, 노인네들의 경험을 우대하고 그에 매달리고 있기에는 어딘가 모자람이 많아 보여, 무시하려는 풍조가 만연되는 현재 세태를 일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기본 틀인 좋은 관습이나 전통은 지켜져야 한다는 명제로 보면, 노인네들의 이야기를 너무 과소평가하며 심지어는 잔소리로 치부하여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태도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으로 여겨진다.


어찌 보면 젊은이들의 그런 태도가 노인네들의 의견을 더욱 개진하려는 의욕을 고취(?)시켜 주는 그래서 잔소리(?)를 더욱 양산하게 하는 순환의 고리를 더욱 굳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일이 발생할 경우 요즈음 내가 취하는 태도는, 그 결과가 나타난 장소로 사람들을 끌고 가서 현장을 보여주고,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될수록 말을 아껴 잔소리꾼으로 낙인찍힘을 거부하는 심정에서이지만, 어떤 때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경우도 생기어 속을 끓이는 답답한 때도 만난다.


오늘도 그 빈 맥주 상자를 들고 나서려다가, 내 손으로 비닐과 종이를 분리한 후, 따로따로 분리 처리하도록 지시하며 관계자에게 넘겨주는 일로 사건을 종결지었지만, 마음의 한구석에는 미진한 그 뒤풀이가 남아돌고 있다.

-야! 이 친구들아 나를 잔 소리쟁이로 만들지 않도록 모든 일들을 좀 똑똑히 처리해요.

말을 하고 싶은데, 이 말이 바로 나를 잔소리꾼으로 만드는 과정의 첫마디 말이 아닐까?



주*1 : Land Fall :

오랜 항해 끝에 처음으로 육지를 눈으로 보게 되는 일. 현대의 항해는 자신의 위치를 거의 언제나 알 수 있는 환경이지만, 예전에는 천측을 주로 하여 장기 항해를 하였기에 천측을 며칠씩 못하게 될 경우, 추측 항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항해 중의 Land Fall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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