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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수신기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는 기기

by 전희태


GPS.JPG 지금은 구닥다리 GPS 수신기이지만,




가는 빗줄기가 지나친다. 줄기차고 험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겉옷을 슬쩍 적실 정도로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비가 그렇게 쉬고 있는 중이지만, 하늘은 아직도 흐린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수시로 내리다 말 다를 반복하려고 하니, 옛날 같으면 선위(본선의 해상에서 위치)를 내는 데 지장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전천후 이용 가능한 GPS가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단지 갑판에서의 오늘 일과인 용접 작업의 실행은 차질을 빚고 있다.


그래도 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하고, 바람을 따르는 파도도 어느새 많이 누그러져 가면서, 더 이상 흔들어 주는 요람의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것만도 안도가 된다.

단지 지난번 이곳을 지나 살다나 베이를 찾아갈 때 도와주었던 아굴하스 해류가 그때의 도와줌에 이자라도 처서 되돌려 받으려는지 계속 배의 전진을 거꾸로 밀어 방해하는 당연한 해류의 일을 하고 있다.


결국 8노트의 눈금에서 안간힘을 쓰다가 다시 떨어지는 속력으로 만들어 주니, ETA를 자그마치 새벽 2시에서 오후 13시로 11시간이나 늦게 계산하도록 강요당하는 형편이다.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해류의 방해가 13시로 수정해서 내준 ETA 조차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만들어 준다.

대리점에서는 그때 입항해 들어와도 즉시 파이로트가 승선하여 접안한다는 연락을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맘이 들게 하는 일이다.


밤 열한 시가 되었다. 변침 하는 침로가 좀 더 육지 쪽에 가까운 100 패덤 등심선의 안쪽에다 그어져 있다. 거의 100패덤 등심선을 따라 움직이는 AGULHAS 해류의 본류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니 역조의 영향도 같이 떨어져, 그에 따른 선속의 현저한 증가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동안 9 노트를 밑돌게 유지하던 속력을 11.5 노트로 올려 버린 결과가 GPS의 위치 보드에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24시간 내도록 켜져 있는 GPS로 인해 망망대해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정확한 현 위치를 알게 되어 대양 항해에서 제일 큰 어려움인 위치 점검이 해결된 것이다.

남은 거리를 열심히 산출하여 ETA의 재조정을 시도하여 <도착 12 시간 전 통보, 전보>를 11 시로 정정하여 내어 준다. ETA는, 해상에서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는 진짜로 도깨비놀음 같은 어쩔 수 없는 항목인 듯싶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가 있는 동안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자못 흥미로운 일이지만, 기상상황의 급격한 변화가 있을 시 즉시 깨우라고 적어 놓은 야간 지시록에 의거하여 당직사관의 당직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이니, 만약 그들이 나의 단잠을 깨우지 않는다면, 염려했던 사항들 중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로 봐도 괜찮은 일이 아닌가.

그렇게 조용한 하루 밤이 지나가기를 고대하며 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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