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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큰일 날 뻔했네

선창 청소 검사에 불합격 통보라도 받는다면.....

by 전희태

리처드 베이 외항 방파제

100731-도선사하선082.jpg 도선사의 승선


밤 새 속력이 빨라진 상황이 그대로 이어져 아침 11시 도착이 가능하게 되었다.


항만 경계를 1025시에 통과하여 그 시간으로 N/R TENDER를 하였고 한 시간 선착선이 있어 그 배가 접안하는 시간을 기다려 1420시에 도선사 승선으로 예정이 잡혔다.


그동안의 약 세 시간은 닻을 내려주고 기다렸다. 예정한 도선사 승선에 맞춰서 이번에는 닻을 감아 들이며 접안을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외항에는 사실 우리 배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BULK CARRIER(살물선) 두 척이 선착선으로 더 있었건만, 그들을 모두 제치고 거의 도착 즉시 접안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항을 즐거워하면서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현문 사다리를 내려주자마자 즉시 올라 온 대리점 직원과 한창 입항수속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사무실을 노크하는 사람이 있다. 성깔께나 있어 보이는 어떤 백인 친구가 선장을 찾는다며 현문 당직자를 따라 사무실로 찾아왔다.


9번 HOLD에 물이 괴여 있고, 6번 창은 청소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선적 작업을 할 수 없다며 큰소리를 친다. 작업 전 선창 검사원이다.


9 번창은 수세식 청소를 하지 않고 마른 빗자루 청소를 했던 선창이라 그곳에서 물을 발견한다는 것은 빌지 라인이나 중간 밸브의 어딘가 새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6번 창은 발라스트를 선적하는 선창으로 이미 전 항구에서 발라스트 해수를 모두 펌핑 아웃시킨 상태이지만 아직 물기가 남아 있은 모양이다.


선창 검사원이 선창에서 물을 발견했다는 것은, 이른바 선적전 화물창 검사에서 불합격을 당했다는 통보나 다름이 없으니 일이 난감해졌다.


<순간적으로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하는 마음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신경질을 부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요, 아니 부릴 처지도 못 되니, 차분히 처리하는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며, 우선 홀드의 빌지 라인을 통해 선창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퍼내기로 한다.


뺀들 뺀들 해 보이는 그 서베이어라는 작자가 큰소리를 치며 으쓱 이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열불이 나지만 일단은 그의 마음을 더 이상 기분 나쁘게 돌아가지 않도록 비위를 맞춰주며 빨리 물을 빼라고 지시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잘 안 빠진다고 이야기하던 서베이어가 한 시간 후에 다시 와서 검사를 하겠다며 배를 떠났다.


비 당직 중인 전 선원을 6 번창에 투입하여 물을 쓸어 모으는 일을 진행하고, 9 번창에서는 물을 뽑는 일을 시작하여 약 한 시간 후, 일을 무사히 마쳤는데도 그 백인 서베이어는 오지 않고 있다.


그가 나타나서 이른바 선적전 선창 점검에 패스를 받아야 하는데, 오지는 않고 시간은 자꾸 지날 무렵, 다른 검사원이 왔다는 소식과 함께 검은색 피부의 검사원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선창을 내려다보더니 간단히 짐을 실을 수 있다고 판정해주니 즉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로서야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주는 인물이 더 있을 수 없으니 최대의 예의를 베풀며 감사하면서도 어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 왔던 검사원은 예전 백인 정권 시절부터 검사원을 하던 베테랑이고, 나중에 온 흑인은 그 당시에는 정식 검사원은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런 업무의 보조 정도를 하던 인물이란다.


세계적인 지탄을 받던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인종 분리 정책-를 쓰던 정권이 쫓겨나며 백인들이 주도권을 빼앗기는 세월이 되고 보니, 본선의 빠른 출입항을 보조해야 할 대리점에서는 까다롭게 구는 백인 검사원은 기피하며 일을 진행하여 평소 같았으면 머뭇거렸을 선적 업무를 지체 없이 치러내게 만들어 준 것이다.


정식의 일처리를 비껴서 약식으로 행한 상황을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통과 못하면, 재 청소와 그에 따른 부대 작업도 실시하고 경비도 그만큼 더 들여야 하는 입장의 본선으로서는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인 상황이다.


긴장했던 속마음을 훑어 내린다. 별 탈 없이 작업하게 된 사항은 감사하지만, 다음부터는 더 이상의 물이 새는 일 같은 취약개소가 바쁘게 나타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한 점검을 가지도록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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