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베이 부두에서 만난 사람들
보는 관점과 사람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길은 여러 가지의 곁가지를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백인들을 만날 때의 느낌은 어딘가 저조한 감정에 침잠한 분위기가 넓게 그들 사회에 퍼져 있다고 보였고, 우리 동료들 여럿도 같은 생각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이곳을 찾아왔을 때, 퍼붓던 비가 계속 들쭉날쭉하며 괴롭히듯 너무 억수같이 오고 있기에 지금 현재 계절이 그렇게 기상이 나쁠 때가 아니라고 여기던 차라, <지금이 우기이냐?>고 물었다. 하역 작업을 위해 배에 올라온 사람에게 말을 붙이려고 인사차 물었던 말이기도 하다.
헌데 그는 우기가 아니라며, 왜 이렇게 사우스 아프리카에는 변하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우울한 얼굴로 대답한다.
약간의 기상 이상에 대해 물어본 것인데, 나오는 대답이 기상상태를 포함하여 세상 모든 일이 우울하다는 표현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백인이다.
이렇듯 이곳의 백인들은 의기소침 가운데 살아가는 형편이고, 반대로 새로운 일자리를 차고 들어와 신나게 일하는 흑인들은 웃는 얼굴의 유쾌한 생활을 자유를 즐기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것도 나 혼자 만이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다.
지난번 왔을 때보다도 입항 수속에 참여하는 관리들의 숫자가 흑인들은 많이 늘어난 반면 줄어든 백인들은 수속에 참여하고 있는데도 어딘가 포기했거나 단념한 표정을 보이며 건성건성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도 일부 참여는 했겠지만 하여간 그들의 조상들이 세워 놓았던 흑백차별의 신나던 시절의 메리트를 모조리 잃고 이제는 흑백이 동등한 입장에서 사는 게 힘든 모양이다.
아니 반사적인 현상일까? 어떤 면에서는 백인이 차별화받는 그런 나쁜(?) 세월로 접어들어 의기소침은 물론이고, 실제로도 불이익을 많이 당하는 입장이니, 신이 날 것이 무엇 하나 있을 리가 없다는 그런 마음가짐인 것 같다.
어제의 홀드 서베이어도, 사실 엄격히 따지면, 그렇게 철저하게 체크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조치할 사항을 알려주며 그대로 잘 되는가? 만을 확인하면서 끝내도 될 터인데 너무 크게 일을 벌이려다가 제지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편 선적을 총지휘하는 인물은 흑인의 슈퍼인텐던트로서 그 정도에 뭐 그리 문제 삼을 것이 있다고 저렇게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식으로 입을 삐쭉이는 반응을 보였었다. 예전에는 슈퍼인텐던트 자리가 백인이 독점하던 자리였다.
실제로 그 흑인 감독의 의도대로 작업에는 별 지장 없이 끝마무리가 되어 곧바로 물을 뺀 후 작업이 시작되어 괜스레 까다롭게 굴었던 백인 서베이어의 홀드 클리닝 상태 점검은 마치 우리 선원들을 괴롭히기 위해 벌어졌던 괜한 해프닝 같이 되어 버렸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은 백인인 서베이어가 예전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상사급의 자리에 있는 흑인 감독관의 간섭에 의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치 못한 점이다.
즉 흑인의 백인에 대한 태도가 예전에 당했던 일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거꾸로 그런 일을 가능케 한다는 느낌도 받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절대 빈곤의 모습으로 상점가나 은행 앞에서 놀고 있다가 들리는 사람을 보고 구걸하는 아이들은 모두가 흑인인 점을 보면, 인종차별 정책을 거두어들인 것이 이들의 가난까지 구제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는 옛말도 있으니~
예전 흑백분리 정책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 더반 항에 기항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상륙하여 해수욕장 부근에서 만났던 유난히 흰 치아와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던 우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이 새삼스레 떠 오르며 그 아이들의 현재가 참으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