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집으로 전화 걸어 알고 싶은 이야기들
핸드폰 전화기로 우리나라에 전화를 걸어주고, 요금은 달러로 챙기는 영업을 하는 젊은 친구가 배에 올라와서 당직 중이던 여러 명의 선원들이 편리한 마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단다.
나도 집에 전화 거는 데 동참하기로 했다. 배의 시간으론 오후 한 시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저녁 여덟 시가 되는 때라, 식구 모두가 거의 다 집에 있을 거라 여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받아 주는 사람이 없어 통화가 안 되고 나니 슬그머니 안달이 난다.
애타는 마음을 두 시간 가까이 다스리며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부두로 내려가서 선물가게에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은 되었지만,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여 걸라는 안내의 음성이 흘러나와 다시 한번 더 맥 빠지게 만든다.
이제 마지막 시도라는 심정으로 천천히 다이얼링을 한 후, 또 한참을 기다린 것 같아 초조감이 거세어질 무렵, 드디어 반가운 아내의 응답 소리가 들려온다.
비록 음질이 좋지 못해, 좀 탁하고 썩심 한 목소리로 변해서 들리지만, 그래도 오늘의 기다림과 초조감을 모두 날려주는 지구 저편에서 날아온 아주 반가운 음성이다. 목소리 타령과 전화 감도 이야기로 통화의 서두를 길게 장식했다가는 그런 말만 주고받으며 요금을 올리고 통화를 끝낼 우려도 있어 보여, 바로 안부 묻기로 들어갔다.
그간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우기던, 막내 애가 지난여름 방학 중에 아르바이트로 다니던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입사하더니, 해병대 지원을 포기하고, 훈련소 소집 영장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근무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 준다.
회사 다니는 재미에, 지원제를 택하고 있는 해병대의 입대를 포기하면서 까지 일에 빠져 있다는데, 마침 둘째도 취직자리를 구할 것 같다며 집에 들렀다는 말도 함께 전해 준다.
남자니까 구태여 피해 가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 꼭 그 길만을 밀어붙일 필요 역시 없다는 생각을 했던, 막내의 해병대 지원 입대가 그렇게 무산되게 된 점을, 오히려 잘된 일 일거라는 쪽으로 내 생각을 선회시킨다.
오늘이 두 번째 출근하는 날로서 아직 회사에서 퇴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막내가 벌써- 아니, 어찌 보면 세 아들 중에서 제일 먼저 취직하여 돈을 버는 아들이 되었음을 축하를 해야 할지 비관을 해야 할지 잠깐 머뭇거려진다.
하지만 아픈 몸의 큰 형이나 대기만성인 둘째 형과 일부러 비교해 가며, 비관할 필요는 없는 일, 어찌 됐건 좋은 일이니 축하의 말을 덧붙여 주었다.
-이제 우리들도 고생 끝, 행복이 시작되는 거예요. 라며 우스갯소리를 곁들이는 아내는 어느새 즐거운 목소리로 바뀌어 있다.
그렇게 막내아들의 취직 이야기를 전해주는 게 꽤나 기쁜 모양이다.
아들 딸 구별 없이 두 명 이상 낳지 말자는 캠페인으로 떠들썩하던 70년대 말, 친구들 사이에서 원시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어가며 낳았던 아이이니 더욱 그렇겠지.
아들 욕심 많다며 놀리던 친구들도, 이제는 부러워하는 눈으로 보게 된, 막내 녀석이 오늘따라 갑자기 보고 싶어 진다. 집으로 전화 건 것도 참 좋았던 오늘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