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기웃 둥 저리 기웃 둥 정신없는 흔들림
큰 파도에 한 번씩 얻어맞으면 배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래도 털고 일어나지만, 그때마다 배안에 있는 삶들의 애간장은 절로 졸아 붙고~
항해 중 만나게 되는 기상 상황 중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횡파가 달려드는 것이다.
사실 태풍이 무서운 것도 한순간에 크고 높은 횡파로 달려들어 배의 복원력을 상실케 하면서, 아울러 선체의 종, 횡강력의 허용 수치를 무시하는 외력을 순간적인 시간에 퍼부어 선체를 부러지거나 찢어지게 만들기에 무서운 것이다.
그런 태풍의 내습은 시시각각 방향이 달라지면서 쳐들어 오며, 어느 순간부터는 가늠하기 어려운 방향에서 높은 삼각파도의 형상으로 닥치는 것이다.
열대성 저기압의 최고봉에 자리한 태풍이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큰 횡파가 아니더라도 어쨌건 롤링이 배를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들어 흔들어 줄 때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배가 제 아무리 크더라도 붙박이 없는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항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기지만,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몸의 운동 신경 때문에, 피곤이 쌓이고 힘든 몸놀림의 저항은 계속되는 것이다.
새벽부터 시작된 롤링으로 잠에서 깨어난 후 곧바로 배의 침로를 수정해주며 피해가기를 시도했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많은 도수의 침로 수정을 가감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 횡요의 움직임 주기는 계속 비슷한 시간을 가지고 배로 달려들고 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올라오는 길에 움직이는 배의 동요에 따라 계단의 손잡이를 꽉 잡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기관장이,
-선장님, 배를 좀 덜 움직이게 할 수는 없습니까? 하며 괴로움에 하얗게 바랜 표정으로 묻는다.
기관장의 낙담하고 있는 지금의 심정에 이해가 간다.
사실 당직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원들도 저마다 롤링과 싸우는 방법인-아니 타협하는 방법이겠지만- 방 밖으로 나서지 않고 자신의 침대에 누워서 뒹굴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배안에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를 취해볼 수 있는 결단의 순간을 가질 수 있는 선장으로서 내가 그의 어려움을 도와줄 일은 무엇인가?
-아침에 침로 수정을 해서 배를 좀 돌려주었는데... 하는 우물거리는 대답을 하다가
-조금 더 돌려줘야겠구먼,
-이따 오후부터는 날씨가 나아질 거예요. 하며 브리지로 향한다.
눈앞의 롤링과 씨름하는 싸움에 그나마 희망이 보태지는 말이 되게끔 대답을 준 것이다.
브리지에 오르니 삼항사와 당직교대를 한 이항사가 정오 위치보고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나를 맞아 준다.
-기상 팩스는 잘 받아 두었지?
-예, 여기 있습니다.
계속 받는 대로 철하고 있는 기상 팩스의 두툼한 뭉치를 내 앞으로 밀어준다.
맨 위에 올라있는 것이 가장 최근의 기상상황을 알려주는 팩스이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위치 부근의 기상 상황부터 살펴본다. 그런 후 전체적인 기상 상황을 비교해 본 후 옆에 깔려있는 푸로팅 차트에서 선위를 확인한다.
현재의 선위가 위도 상으론 다음 변침 점을 지나쳐 있지만, 원래의 코스라인대로 제법 달려야 변침 할 코스라인과 만나게 되는 형태이므로 여전히 아침에 내가 지시해 준 침로를 유지하며 달리고 있다.
이제는 돌려도 될 듯싶어
-이항사, 다음 변침 코스로 돌려라!
-옛 써!
옆에서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이항사가 잽싸게 복창하며 조타수도 거치지 않고 타를 잡아 침로를 수정해 준다.
바람의 세기는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풍향이 달라져 있는 걸로 봐서 몇 시간 지나면 너울의 방향도 달라지며 약해질 기미로 느껴진다..
-OOO도. 다음 코스로 변침 했습니다. 이항사의 복명 보고 목소리가 들린다.
잠시 배의 운동 상태를 감지하느라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선수 쪽을 내다본다.
변침 전보다 확실히 나아진 롤링의 상태가 느껴진다. 요즈음 생체 리듬이 별로 좋지 않은 기관장을 위해 좋게 해결된 롤링을 이제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