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추임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들
동쪽을 향해 달리고 있는 배의 선수루 위로 떠 오르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어 부서지고 있다.
새벽 운동으로 열심히 걸으며 떠 오르던 해를 반겨보던 눈길이, 반환 점인 선수루 위에서 선미 쪽으로 되돌아 서는 순간, 발길 따라 배의 House Marine(거주구)을 자연스레 쳐다보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도 어둠에 잠겨 있던 그곳에 비친 햇빛으로 인해 나타난 멋진 풍경에 내 눈은 그저 짜릿한 신경의 놀람으로 멈칫거리고 있다.
하얗게 세워진 하우스의 자태가 마치 투명한 유리장 속의 청색 나사 깔개 위에 곱게 올려진 박물관 유물 전시실의 왕관 처럼 중후하면서도 화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창틀에 갇히어 잠겨 있든 유리창들은 비쳐드는 황금빛 아침 햇살에 반사되면서, 마치 왕관에 박힌 영롱한 보석인양 반짝이는 빛깔을 내뿜어 주니, 순간적으로 볼을 꼬집어 현실을 확인해 볼 만큼,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출항할 때만 해도 바다가 제법 흔들리고 있어서, 하룻밤을 자고 난 오늘 새벽 운동에 나설 때 까지도 조심스레 나온 형편인데, 그것은 그냥 기우였다.
그렇게 개인 날씨가, 한껏 뽐내며 나들이 나온 아이들 마냥, 경쾌하고 명랑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는 거다.
이대로의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유지한다면 저녁에는 9월 보름의 밝은 달도 감상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게끔 환해진 날씨다.
기분 좋아진 상태로 운동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미 밝아진 날씨 따라 하우스 마린은 그냥 환하게 밝아 버렸고, 뱃전에 부딪치며 지나치는 잔 파도의 소리 만이 경쾌한 리듬을 더 해주는 음악 되어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못 믿을 건 사람의 마음이라 했던가? 아니지, 여자는 남자 마음을, 남자는 여자 마음을 못 믿겠다고 했었지 아마. 그러나 그런 사람 마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게 바다의 기상 상황인 것 같다.
아침 바다는 매끈하니 되어 있더니, 점심시간을 보내고 난 후부터, 슬그머니 구불거리는 새로운 너울의 내습이 시작되면서 배를 약간씩 뒤 흔들어 주기를 반복한다.
조금씩 증가되어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바다 위에도 자잔한 바람꽃들이 피어나며 거칠어지려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하늘도 구름이 퍼져 나가는 형편으로 떠밀려가니, 저녁의 보름달 구경은 이미 포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바꿔져 버린다. 그냥 아침에 보여준 왕관만으로 오늘 하루는 만족해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