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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싸움인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앞장서기는 피하는...

by 전희태


IMG_8657(7956)1[1].jpg 서로의 미모를 다투듯이 피어 오른 화분 속 두 송이 수련.



단조로운 장기 항해에서 만나는 모처럼의 주말 오후이다. 트럼프(훌라)카드를 털어내며 손끝이 즐거운 오락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 깨어졌다.


평소 모이던 팀원들이 모습을 숨기고(?) 나타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모이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레 훌라 게임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모르긴 해도 팀원들 모두가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면서도, 남보다 앞장서서 도박(?)을 주선하면, 게임에 패한다는 징크스를 피하고 싶은 심정 때문에 나서지 않는 것이리라.


그래서 남이 나서 주면 그대로 이끌려 참석하는 차림새를 갖추고 싶은 마음에, 좀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던 상황이 진짜로 굳어져 게임판 자체가 파투로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런 엉거주춤한 생각을 모두가 갖고 있었기에, 제 풀에 깨어지고 흐지부지 되니 오전 오후 내내 모임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휴일의 즐거운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네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그만 두지 뭐~, 이제는 그리된 상황에 나마저 오기가 발동한다.

모두가 그렇다면 아예 모임이 깨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굳혀보지만, 혹시 누군가 나서서 다시 주선하면 틀림없이 응하여, 게임에 참여할 것이란 점도 알고 있다.

나 스스로 단호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이라 예측하는 자신이 쑥스럽고 민망하다.


하나 굳이 군더더기 같은 변명을 덧붙인다면, 배 안에서는 어느 정도 선내 화합을 도출하려는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모임과 게임은 필요한 일이기에, 참석하는 것이라는 지론을 자기 합리화를 위해 떠올리고 있다.


어찌 되었거나 체면치레를 갖기 위해 서로의 눈치를 보는 일종의 눈치 게임이 본 게임인 카드 게임의 전초전으로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아무리 작은 게임이지만 돈이 걸려있는 도박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가능하면 잃지 않고-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따야 하겠다-는 경쟁 심리가 강력하게 작용하므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일종의 작은 기싸움에서도 지기는 싫은 것이다.

이제는 누가 이런 분위기를 타파할 마음을 가지고 앞장서 나설지 자못 궁금증이 부풀어 오르지만, 나는 결코 먼저 나서지 않으리라 다짐하다가, 더 이상 뭘 바라나? 에잇! 자리를 피해 버리자.

그리고 선수루로 나가 야호! 큰소리 고함이라도 질러서, 스트레스도 떨쳐내고 호연지기도 키움이 훨씬 나은 것 아니냐? 결단을 내린다.


실내를 빠져나왔다. 300 미터 가까이 앞쪽에 있는 선수루를 향해, 그냥 잡생각을 훌훌 털어 버린 상태로, 발걸음을 갑판 위로 내 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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