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만 하는 놈, 뒤치다 거리 하는

by 전희태
노래방.jpg D호의 선내 노래방

선내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품이 왜 내구연한보다 빨리 고장 나는지 그 이유와 또 그런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방지책을 앙케트로 여럿에게 물으니 이구동성으로 자기 물건 같이 아껴 쓰는 마음이 없어서라는 대답을 한다. 백 번을 말해도, 백번을 들어도 옳은 말인데, 왜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우리 배에도 그런 일은 일어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좋은 해결책은 누구나 모두 갖고 있지만 그것을 실제 행동에 옮기어 실행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중도덕을 지켜라. 무엇 무엇은 하지 말아라 하는 주입식의 교육은 수도 없이 받았지만 그걸 실제로 행동에 이르게 하는 지침으로서는 모자람이 많은 교육을 받아 왔었다.


이를 열거해 보면,

첫째, 일제의 잔재를 떨어내지 못한 교육이 오늘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남의 땅을 침탈하여 노예처럼 부려먹으려던 그들 일제가 우리에게 행한 정책은 무엇 무엇을 하지 마라! 하는 부정적인 가르침과 그에 상응한 가혹한 처벌로서 우리를 다스리려고만 했지 동반자로서 함께 이루려는 정책 의지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독립된 스스로의 국가를 가진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은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해 만들어 놓았던 이런 통치 방식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친족, 친구, 이웃 위에 군림하는 식의 권위만 앞세우는 권력의 한없는 남용을 즐겨 왔다.


한편,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는 귀찮은 것, 또는 지켜봐야 손해 보는 것으로 까지 전락된 일로 취급하다가도, 자신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타인들에게 강조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사용하곤 했다.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적 인식이 쌓이니 사람들의 의식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는 의무를 등한시하며 눈앞의 편함에 안주하는 대중적 정서를 갖게 된 것이리라.

대부분의 정치인을 포함한 사회적으로 선두에 서있는 인사들이 자신을 포함 자식들에게도 국방의 의무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은 놓치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생각해 볼 문제이다.


둘째, 책임 의식의 결여를 들을 수 있겠다.

한 때 가톨릭의 기도문에 나오는 문구인 “내 탓이오.”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시기도 있었지만, 진실로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 앞에 나타난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해 좋건 나쁘건 패배의식에 젖은 내 탓이 아닌 당당한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대처하는 뜻이라면 세상은 훨씬 살맛 나는 아름다운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설 것이다.
이렇듯 어지간히 남들이 간여된 일 일지라도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강조하는 “내 탓이오”가 산뜻하게 본받아야 할 뜻으로 우리들 앞에 다가선다는 이면에는 좀도둑 같은 이기심에 누구나가 오염되어, 자신의 행위로 인해 발생된 일 일지라도 나 몰라라 도망치는 비겁함으로 대처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셋째, 용감의 미덕이 모자라거나 거의 없다는 불행이다.

용감의 미덕은 남 앞에 들어내어서도 좋지만 남몰래 들어내지 않고 이룰 수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의 삶은 일종의 작은 전쟁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직접적인 총칼의 대결로 쏘고 찌르는 행위만 없을 뿐이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은 바로 그 자체가 격렬한 생존경쟁을 이루며 살아가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치열한 전쟁에서도 어떤 룰이 있듯이 사람이 경쟁하고 사는 삶에도 기본적인 틀이 있어 여기서 벗어나는 행위를 우리는 도덕적 파탄이니, 파렴치하다느니 하며 규탄도 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일로서 타인에게 규탄의 대상이 됨을 지극히 싫어하며 피하려고 하는 바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규탄이 두렵거나 뒤치다꺼리하기가 귀찮은 생각에 자신이 한 일이지만 남들이 보지 않았으니 모를 것이라는 얄팍한 생각에 수습하려 않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어 애매한 남들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 행위, 바로 그런 것을 용감하지 못하다는 말로서 표현해 본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풀이해 봤지만 요컨대 요점은 사물의 결과를 지금까지 받은 교육으로나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서 나쁘다, 안 된다, 하는 판단은 하지만 그것은 오직 생각으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 실제 행동이 뒷받침된 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공동생활에서의 필요선인 공중 도덕심을 마음만으로 끝내게 하고 행동은 결여된 결과로써 우리 앞에 펼쳐지게 하는 것이다. 자기 개인의 것이면 스스로가 앞장서 보호하고 아끼려 하지만 일단 소유가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면 나 몰라라 하는 그 몰염치함이 바로 양식적인 행동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임을 스스로의 속을 들여다보아 알아내었으니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 줄 때가 된 것이다.


세탁기를 사용하고, VTR을 시청하며, 공동변소를 사용할 때에 세제의 투입이나, 스위치의 개폐를, 또 변기를 사용하고 난 후에 자신이 사용하므로 서 흘렸거나, 더럽혀진 곳을 스스로 청소하고 뒷마무리를 깨끗이 해놓는다면 다음에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기분 좋은 분위기에서 쓸 수 있고 그것은 곧바로 고장 없이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 아닐까?

즉, “사용만 하는 놈, 뒤치다꺼리하는 분”으로 이분화됨은 결코 안 되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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