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선상에 감수성을 가져온 여성 항해사
아침 9시.
선내 사무실에 앉아 오늘의 일과를 점검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는 선내 전화 벨소리가 크게 울린다.
평소와 달리 화들짝 하니 놀라며 수화기를 들었다.
“브리지, 선장입니다, 여보세요?”
평소 브리지에서 전화를 주고받던 습관이 튀어나와, 현재 있는 내 방 보다 한층 더 올려준 브리지에서 전화를 받는다는 응답이 엉겁결에 나왔다.
“예, 선장님, 저 3 항사입니다. 배 옆에 쌍 무지개가 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브리지 당직사관인 3등 항해사의 상기한 듯한 음성이 수화기에서 나온다.
조금 전 소나기가 쏴-아 하니 지나치는 소리를 내더니, 해가 다시 구름 사이를 비집어 나오면서 무지개를 만들어 보인 모양이다.
"이런 세상에~, 배 옆 바다에 무지개가 떠 있다고 선장에게 보고하는 항해 당직사관은 처음 만나는군..."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우선은 웃을 수가 없었다. 처음 전화벨이 울릴 때는 혹시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적인 의혹으로 속이 뜨끔했지만, 무지개 출현 보고를 들으며,“아하, 우리 배 삼항사가 여자이지.” 하는 상념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 경우 무슨 그런 것을 일일이 다 보고하느냐? 고 퉁명스레 이야기한다면 삼항사로 처음 승선 중인,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초심자의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짓밟아 주게 되어, 앞으로 진짜 필요한 당직 중의 보고를 안 하게 만들거나, 아니라도 선내 생활의 의욕적인 당직 태도를 꺾게 만드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볍게 응수하기로 한 것이다.
“알았어. 근데 무지개는 예쁜 거야?” 다정스레 응대해준 후 전화를 끊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무지개도 별로 아름다운 편이 아닌 그저 지나가는 시꺼먼 비구름의 수증기에 비치는 햇빛에 무지개가 들어 있다고 느낄 정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달리는 배의 움직임 때문에 어느새 무지개의 때깔이 좀 바라진 모양이다.
어쨌든 그런 여성의 섬세한 감성으로는 처음 만나보는 대양에서의 무지개가 그것도 손으로 잡으면 잡힐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가까웠으니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누군가 자랑삼아 알리고 싶은데... 하다가 선장님에게 알려 같이 보아야지 하는 순수한 마음 되어 전화벨을 울린 것 일 게다.
그런 여성적인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어쩌면 삭막할 수밖에 없는 남자들만이 생활하던 선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필연의 일로 된 것이 아닐까? 사실 여성적인 섬세한 판단을 당직에 대입한다면 그 꼼꼼한 뒤처리가 여러 가지 해난사고를 방지하는 데도 일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여자 선원이기에 지닐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만든, 삼항사의 무지개 발견 보고는 항해 당직 중이던 여성 해기사로부터 내가 처음으로 받았던 보고 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