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항 바람으로 마음고생만 더해졌지만
잘 해나가고 있던 화물의 양하 작업이 갑자기 지지부진하며 하룻밤을 더 포항에서 자고 떠나게 진행되고 있다. 하루를 더 있게 될 사항에 대해 이미 집에 다녀오기를 포기하고 있던 나와 같이 포항에서 멀리 사는 사람들은 머쓱하니,
-가로 늦게 뭔 일이야? 할 정도까지 아쉬움을 참아가며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포항이나 가까운 부산 등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또 한 번 더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이어 모두의 부러운 마음을 사고 있다.
그래도 어쨌거나 육지에서 하루를 더 묵어서 간다는 것은 뱃사람들로서야 기쁜 현상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보아 넘기기로 한다.
그림의 떡 마냥 과분하게 얻은 하루의 더 머무름인데, 새벽부터 불기 시작하는 바람의 모습이 예사 장난 같은 형편을 넘어서서 제법 센바람이라 은근히 신경을 쓰며 걱정스레 맞이하게 되니, 형세의 변함이 죽 끓듯 하는 새옹지마의 고사를 새삼 되짚어 보게 만든다.
하룻밤을 집에 다녀온 사람들이 모두 무사하게 배로 다시 돌아온 아침나절, 센바람 때문에 마음 졸이던 상태를 모두 접어가며 출항 준비에 들어섰다.
출항 작업을 보려고 나온 지점의 김대리에게 내 결혼기념일인 2월 22일 아침에 장미꽃 31송이의 축하 꽃다발을 아내에게 보내게 해달라고 대금을 지불하며 부탁한 후 헤어짐의 악수를 나누고 브리지로 향했다.
아침 여덟 시 출항 예정이었지만 먼저 접안 작업을 하고 있던 선박이 지체되면서 연쇄적으로 우리 배도 좀 늦어져서 계속되고 있는 출항 작업이다.
라인 맨 들과 본선의 선원들이 현문 사다리를 어떻게 처치하는지를 보려고 윙 브리지에 나가니 나의 얼굴과 귀를 아예 분리하여 끊어 내려고 작정이나 한 듯 싶게 차가운 바람이 할 퀴며 지나친다. 순식간에 동상에 걸릴 것 같은 형편이다. 다행히 현문 사다리는 걱정 안 하게 잘 처리해주고 있었다.
이제 부두에서 밀어주는 바람과 함께 터그보트의 끌어당김으로 뱃전이 부두에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좀 전까지 힘겹게 잡아 주었던 터그 보트 네 척에 묶었던 예선 줄의 거두어들임이 명령되면서, 그대로 밀고 있는 예선의 동작 따라 배의 선수가 방파제 입구를 향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방파제 넘어 항계 바깥의 파도가 높아짐을 염려하여 도선사에게 미리 방파제 안쪽에서 내릴 수 있도록 양해해주니 내가 직접 배를 조선하여 나가야 하는 시간이 앞 당겨졌다.
공선 상황에서 바람에 밀리는 현상으로 인해 항로의 우현을 지키고 있는 1번 부표 쪽으로 계속 선수가 밀리게 되어 잠깐 해도실에 들어가 위치 확인을 하고 나왔는데 그동안 부표가 많이 가까워져서 위험한 상황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좀 더 한눈을 팔았다면 그대로 1번 등부표(燈浮標)를 뭉개며 출항할 할 정도여서 즉시 원 침로 보다 30도를 더 왼쪽으로 주고 엔진 출력을 빨리 올리라고 기관실에 주문을 하면서 무사하게 지나치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안전하게 등부표를 통과하여 나온 후 가만히 생각하니 이런 것이 <아차! 사고>를 갖게 하는 경우로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며 점점 세어지는 밀어주는 바람을 등에 업고 좁은 해역을 예정대로 항행하여 빠져나와야 하는 일이 얼마나 신경을 긴장케 하는가를 전적으로 보여준 사례임을 새삼 머릿속에 새겨둔다.
방파제를 그렇게 힘들게 빠져나오니 금세 일어난 새하얀 파도가 출항을 환영하는 꽃놀이라도 하듯이 뱃전을 일부러 찾아와서 두드려주며 밀려온다.
하늘은 맑게 개이어 푸른빛을 가득 머금고, 태양은 밝게 빛나 햇살이 비쳐 직접 피부에 닿는 부분은 따갑게 조차 느끼게 하지만, 이것이 겨울철 고기압권이 밀려옴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형적인 계절풍(季節風, 몬슨)이 불어 닥친 기상임을 상기하게 만들고 있다.
-선수미 부서! 황천항해 대비한 모든 고박상태등 황천 준비 확인한 후, 뒤처리하고 해산!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