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맞서가 아니라, 바람과 함께 하는 항해
허연 이를 들어내 보이며 겁을 주는 육식동물의 벌린 아가리를 연상케 하는 파도가 온 바다를 뒤집기 시작하는 속을 빠져나와 부산항과 대마도 사이를 거쳐 한밤 내내 따뜻한 남쪽나라를 향한 뜀박질로 이제 일본 규슈 남단의 마지막 육지인 섬들을 뒤로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흰 바람의 꽃들이 어제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낙화 마냥 바다 위에 흩어져 날리는데 단지 뒤에서 쫓아오며 밀어주는 바람과 함께 나타났기에 우리 배의 움직임에는 별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속력에 조그마한 보탬조차 주는 형상이다.
출항 후에서 어제까지 그렇게 무조건 싸우자고 달려드는 깡패 마냥 나타났던 바람으로 인해, 제주도는 태풍이 내습해서 휘저어 놓은 것 이상으로 가로수의 뽑힘 같은 일도 당하는 피해를 받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별로 크지 않은 고기압의 닥침이 그리도 큰일을 해내었나 하는 의아심을 품게 한다.
1036 hpa의 겨울철로서는 작은 고기압이지만 문제는 그에 밀려서 동해를 물러나 일본 열도를 가로질러 북동진으로 달려 가버린 저기압이 상대적으로 갑자기 커진(기압이 떨어진) 때문에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의 기압 경도의 차이가 그만큼 늘어나 생긴 일이었던 것 같다.
<내 배는 살 같이 바다를 지난다.> 정말 노래에서도 불러주듯이 잘도 달리고 있다. 경흘수(輕吃水)이기에 한 번씩 물 위로 스크류 날개 끝을 살짝 보일 때마다 그야말로 부르르 떠는 프로펠러의 회전음과 진동을 감지할 수 있음이 좀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달리는 데는 한결 보탬의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이번 항차야 말로 뉴캐슬을 향하고 있으니 아내와 같이 동승으로 떠났다면 진짜로 시드니도 관광할 수 있을 건데 하는 아쉬움에 한번 더 미적 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대로 한 번 더 동승 할 수 있는 구실을 남겨서, 다음 기회를 보자던 말로 아쉬움을 달래며 그녀를 집에다 모셔 놓고(?) 떠나 온 항해이다.
방으로 돌아와 한번 더 집으로 전화를 걸어 볼까 생각하며 찾아본 휴대폰은 배터리 충전기 안에서 푸른색 신호로 이미 전지가 다 차도록 충전되었다는 표시를 주고 있지만, 이미 통화권을 이탈했다는 표지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엊저녁까지는 계속 전화 연결이 되었지만, 오늘부터 사용을 일시 중지시켜주도록 신청을 한 후, 다음 달 입항할 무렵에 다시 연결되도록 하자고 이야기했던 만큼, 또 우리나라와 진짜로 멀어져 버렸기에 통화 불가한 휴대폰의 모습은 한가하기만 하다.
비록 휴대폰이란 껍질은 가져 가지만 통화라는 내용은 할 수 없게 된, 어쩌면 빈 껍질만을 챙긴 모습이, 마치 우리들 선원이 몸은 비록 외국을 향해 떠나고 있지만 마음 만은 국내의 집 가족들 곁에 남겨둔 채 떠나는 행태와 닮아 보려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북돋아 주기라도 하려 했음일까? 어서 빨리 다녀오라고 바람이 밤새 뒷바람으로 등을 떠밀어 빠르게 떠나가도록 만들어 준 것 같다는 데까지 생각의 나래가 비상하고 있다.
<바람에 맞서가 아니라, 바람과 함께 하는 항해>의 묘미가 한결 기분 좋은 이번 항차의 안전항해를 점치며 즐거운 항정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