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항시 선원들의 가족상봉 기회
아침에 위성전화가 걸려 왔다. 포항지점에서 걸려 온 전화다.
우리 배의 접안과 작업 예정이 달라지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점의 P 과장이 걸어온 거였는데 예정했던 4일 오전 접안, 5일 오전 쉬프팅 7일 오전 출항이란 예정이 조금 바뀌었단다.
우리를 따라오던 경쟁선이 아예 늦어져 5일 늦게나. 입항하게 되어 5일 오전에 본선이 그 배를 위해 자리를 미리 비워줄(선석쉬프팅) 이유가 없어지니 6일 아침에 비워주고 다음날인 7일 오전에 출항하게 한다는 예정으로 바뀌었다며 5일 오후에 집에 다녀오려던 예정이 취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려왔다.
그런 스케줄대로 따르면 이번 항차 집에 가서 아이들 만나 보는 것은 물 건너 간 일이 되어 버리니, 불끈 속으로 치미는 짜증이 생겼지만, 그대로 남들 앞에 내 보일 수는 없는 일. 그냥 알았다고 이야기는 하면서도, 속으로 부글거리는 심증을 삭이느라고 잠깐 우물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하며 통화를 끝내고 아내와 이야길 하니 4일의 접안을 끝내고 집에 갔다가 다음날 내려오도록 하여 지난 항차에도 집에 가보지 못한 아이들의 서운함을 달래주란다. 그래서 5일 11시의 비행기를 예약시켜 달라고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걸어 요청했다.
포항에 가깝게 접근할 무렵.
VHF 통신으로 해군으로부터 본선의 PARTICULAR에 대한 문의와 행선지, 출항지, 선적화물의 내용을 물어 와서 대답을 해준다. 전에 없던 일이다.
-왜 전에 없던 일로 상선 선원들의 운신의 폭을 구속하는 일을 만드는 거야? 그런식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삼십 년 전에는 나도 그들처럼 현역으로 근무했던 기억을 떠 올리게 되며 마치 후배들한테 무언가 책잡히어 그리 된 일이라도 생긴건가 싶은 가당찮은 상상까지 곁들이니 조금은 씁쓸한 심정마저 든다.
어쨌거나 예정보다 한 시간 가량 빠르게 포항 외항에 도착하였다. 항무 포항에서 지정해준 투묘지에 닻을 내리고 즉시 도착 보고를 하며 내일의 본선 예정을 물어보니 아침 여덟 시 반에 도선사가 승선할 거란다.
아침 11시 10분의 비행기 좌석을 아내와 나의 상경을 위해 예약했다는, 지점의 통보에는 미칠 수 없는 시간에 도선사가 승선한다는 알림에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밤중이지만 지점의 직원 집으로 전화를 넣지 않을 수 없다.
늦은 시간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내일 13시의 오후 비행기로 바꿔서 표를 예매해 놨다는 전갈을 상냥히 전해주며 그런 사실을 이미 본선에 통보했단다. 통신 연락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게 바쁘게 집에 다녀올 이유는 빤해 보이는 오직 한 가지 사안 때문이다.
가족상봉이란 선원들이 가장 바라고 있는 일 때문인 것이다.
이번 항차의 경우에는 가족 중 가장 중요한 아내와는 같이 동승을 하고 있기에, 굳이 아내를 만나러 집에 갈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머지 가족들과의 만남도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집에 가보려는 것이다.
한번 집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때 까지는 가족들과 만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선원들의 경우 우리나라 항구에 들어왔다는 것은 모처럼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해후할 수 있는 찬스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장기간 집을 떠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랄 수 있는 인지상정의 상황이지만, 그러나 선원으로 승선했다는 의미를, 그 배의 스케줄에 따라 일을 해주고 급여를 받는 입장임을 감안한다면, 배에서 연가나 기타 사유로 완전히 하선하기 전까지는 책임지고 있어야 하는 배를 함부로 떠나서는 안 되는 걸림돌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전 우리의 해운이 초보적인 시절- 해운의 활성화로 선원들 위상이 한창 좋아지던 때에는 우리나라 기항 시 당직자를 제외한 선원들이 집에 가보는 일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관행으로 있어 왔었지만, 이제 해운의 틀이 제대로 잡히고 규모도 커지면서 이렇게 집에 가려는 일은 비공식적이거나, 회사에 대해 약간의 얼굴 깎임을 각오하고 실행해야 하는 일로 분위기가 변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배를 떠날 수 있고, 선장도 24시간 재선 의무라는 규정으로 강화되어버린 현실이기에 비공식적으로 집에 다녀 오려는 일은 어느새 여려면에서 찜찜함을 당사자들에게 주는일로 되어있는 것 같다.
-사람은 밥만 먹고는 못 사는 거잖아!
하는 우스개 소리를 크게 소리쳐 보면서 내친걸음으로 배를 나서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항사에게 선장 직무 위임서를 작성하여 직무 위임을 해 놓고 배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