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스트 탱크의 물갈이 작업
여명이 트일 때까지 체육실 실내에서 자전거 타기를 하여 땀이 흘러내리도록 달렸다.
이제 날도 어지간히 밝아 오리라 믿고 갑판으로 나서니 새벽이 찾아오는 모습이 오관을 통한 수런거림으로 다가서는 게 참 싱그럽다.
매일 보아도 새로운 감회를 주는 새벽의 상쾌함을 만끽하며 계단을 내려서려는데 평소와는 달리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작은 물방울들의 비산(飛散)이 얼굴에 확 끼쳐와 닿는다.
온 갑판 위로 흐르는 물이 보이고 9 번창 옆에 있는 발라스트 탱크의 에어 벤티레이터(AIR VENTILATOR. 통풍관)의 개구부를 통해 허옇게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도 보인다. 이른바 <발라스트 해수의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배들은 짐을 싣고 푸는 과정에서 안정감 있게 짐을 싣고 부릴 수 있도록, 또 선체 강도의 유지, 경사, 트림(TRIM, 선박의 전후방의 경사)등을 안전하고 적절하게 조절하기 위해 발라스트라는 바닥짐(선체 안정을 위해 싣고 다니는 물 등의 유동성 짐과 시멘트 등으로 고정시켜 놓은 짐으로 구분할 수 있음)을 가지고 다니는데 우리 배 같은 살물선(撒物船, BULKER) 종류는 공선(空船) 시에는 특히 많은 양의 발라스트용 해수를 싣고 다니는 것이다.
공선으로 선적지를 향해 갈 때는 해수로 발라스트를 선적하여 공선으로 인한 배의 흔들림, 충격 등을 방지하도록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짐을 실을 때는 싣는 화물량에 맞추어 발라스트 해수를 배출하여 조정하여 주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라스트 해수를 그냥 싣고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될 이 대양 항해에서 왜 이런 발라스트 해수를 넘쳐흐르게 하는 물갈이를 해야 한단 말인가?
예전에는 그런 일부러 물갈이를 하는 일은 하지 않고, 단지 항해 중 나쁜 날씨를 경험했을 때 선체 동요(횡요)로 인해 발라스트 탱크의 통풍관을 통해 새어 나가버린 발라스트를 다시 보충하여 채워주는 일은 종종 있었다.
이제 세상이 지구 상 곳곳에서 무슨 오염으로든지 뒤덮이는 것 같은 각박한 환경오염을 조심하고 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양하지 항내에서 짐을 부릴 때에 그에 맞추어 (차 항의 항해를 대비해서) 실어주었던 발라스트가 반대로 적하 지에 도착하면 (다시 짐을 싣기 위해) 배출시켜야 할 때, 혹여 원하지 않는 오염물질이 같이 유입되어 새로운 유포로 이어질 수 있기에 그 방지를 위한 꽤나 까다로운 관련 항만당국의 검사나 지시사항이 있게 된 것이다.
즉 짐을 싣게 되는 선적(船積) 항구에 도착하여 선적 전이나, 선적 중에 다시 배출시켜줄 때, 그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오염 물질이 함께 빠져나와 선적항을 오염시키는 일이 생물학적 역학조사(疫學調査) 결과 확인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런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양하지에서 실은 발라스트 해수는 선적지에 들어오기 전인 항해 중에 전량을 모두 대해(수심이 2,000 미터 이상 되는)에서 깨끗한 해수로 바꿔 싣고 찾아줄 것을 강제화 한 각국의 검역 법률이 강화되어 정해진 것이다. 그렇게 법률이 생겼으니 벌칙 조항도 같이 생겼는데 그 범칙금도 만만치 않은 액수이다.
특히 우리 배가 자주 찾는 호주는 제일 먼저 이 법률을 시행한 국가 중의 하나이며 자국의 영해를 보호하기 위해 아주 까다롭게 검사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체의 변형이나 파손을 피하기 위한 보호 목적으로 싣는 발라스트를 무조건 규제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싣는 목적에 부합될 수 있게 해수(발라스트)를 바꾸는 방법을 타당한 두 가지 방법으로 지정해 주고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실려진 해수를 한 탱크 씩 차례대로 퍼낸 후 다시 싣는 원초적인 방법으로, 탱크 용량이 적으면 어느 정도 가능한 이 방법이지만, 탱크 용량이 큰 경우엔 발라스트가 비워지는 순간 선체에 커다란 응력이 가해지는 위험한 경우의 발생도 우려되므로 대형선의 현장에서는 좀처럼 쓰지 못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탱크 내에 실려진 발라스트 양의 세(3) 배가 되는 깨끗한 해수를 계속 발라스트 탱크 내로 강제 주입하여 발라스트 전체량을 깨끗이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물갈이를 하는 것이다.
사실 대양에서 첫 번째 방법을 아무런 조치 없이 시행할 경우 선체에 미치는 스트레스로 인해 선체가 찢어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배가 부러지는 불상사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실려진 상태를 그냥 유지하며 물을 밀어내기로 바꿔 치기 시키는 두 번째 방법이 주어진 것이다.
물론 계속되는 강제적인 순환 방법으로 물갈이하는 것도 물이 통과하는 부위에 부분적으로 작은 변형을 줄 수도 있지만, 선체 위험도로서는 미미한 일이라 대부분의 광탄선은 이 방법을 쓰고 있다.
지금 그런 두 번째 방법으로 우리 배에 실려진 발라스트 해수를 교환하느라고 밤새 갑판 위로 물이 넘쳐흐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이 흐르고 날리고 있는 갑판 위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맨몸인 채로는 나갈 수가 없으니 오늘의 운동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방으로 되돌아왔다.
만약 날이 밝은 낮에 지나가는 다른 배가 있어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 배를 보았다면, 갑판에서 선체 주위로 하얗게 포말을 이룬 물이 흘러넘치는 장관에 감탄하며, 몇 번씩 쌍안경을 눈에 더 대어 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