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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력 경쟁에는 졌지만...

너무 승패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by 전희태
220410-속력에 진 배 026.jpg 열심히 따라오고 있지만


아침이 되어 브리지를 찾았다가 방금 당직을 시작하려는 3항사를 갑판일과팀의 TBM을 위한 오늘의 집합장소에 합류하도록 내려보내 주었다.


일항사와 당직 교대를 하여 근무에 들어가려든 3항사는 주갑판에 있는 스에즈 운하 선원룸(SUEZ CANNAL CREW'S ROOM)을 향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모쪼록 다른 배에 가서도 열심히 TBM도 하며 배워서 유능한 해기사로 근무하라는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며 내려 보내 준 것인 데, 그가 서야 할 당직까지도 그동안에는 내가 대신 서주어야 하는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후배사랑인 셈이다.


항해 당직을 서는 눈으로 바깥을 살핀다. 선수 오른쪽 약 4 마일 정도 전방의 수평선을 달리고 있는 배가 새삼 확인된다.


그 배는 어젯밤에 나타나서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이 많이 힘들어 보이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래도 우리 배를 추월하여 앞으로 나가고 있는 그 배는 H 로버츠 뱅크라는 이름을 가진 역시 우리 배와 같은 종류의 광탄선이다.


그 배가 나타나서 우리와 나란히 설 때 그들이 무엇이라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지만, 우선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나도 당신과 같이 만나지는 배는 모조리 따라 잡아내어 앞서 나가던 그런 잘 나가던 배를 타던 세월이 있었어요.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픈 심정이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당시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무엇 하지만 꽤 괜찮은 심정으로 떨어 뜨려 지는 배와 자꾸 통화를 하여 우리 배가 빠르게 추월하여 앞서 나갈 수 있는 성능이 우수한 배라는 점을 정말 자랑하고픈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모두가 다 치기 어린 행동으로 여겨짐은 내가 새삼스레 반대로 당하고 있는 형편이 되니 더욱 그렇다.


세상 삶이 모두 기복이 있어 길흉화복이나 장단고저가 항시 엇갈려가며 우리를 둘러싸는 것을 그때는 왜 그렇게도 모르고 촐랑거리는 마음으로 은근히 폼을 재보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행동을 했을까? 입으로는 새옹지마마저 읊조리면서 말이다.


지난밤이 새도록 꾸준히 이어지는 일관된 속력으로 따라잡아 놓고 이제부터는 눈앞에 서서 앞서 나가기 시작하는 그 배는 생각만큼 우리보다 많이 빠른 배는 아닌지 계속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이 아마도 오늘 하루 종일 눈에 가시처럼 그곳을 달리게 될 것 같다.


마치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행동에 대한 복수(?)라도 해주려고 그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되는 우리 배의 컨디션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눈 뻔히 뜨고 당하면서도 아예 경쟁을 포기하고 주어진 상황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심정의 끝자락에서는 차라리 세상의 경쟁에서 달관하라는 배포를 심어주기 위해서 생긴 일 일거라고 자위하는 심정이 나를 감싸주고 나섰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남의 배를 추월하여 신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던 때보다도 오히려 남의 배에 추월당하여 떨어지게 되는 경쟁에 지고 있는 상황이 내 인생의 도장(道場) 위에 더욱 성숙함을 심어 주며 겸손을 배우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덤까지 주고픈 심정이다.


지는 것의 필요성을 강하게 강조시켜 스스로를 남 앞에 겸손하게 세우도록 자존 하는 그런 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려고, 이 아침에도 저 배는 저렇게 열심히 달리어 우리 배를 뿌리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흐려진 하늘에다 뿌연 연기의 막을 쳐서 그 밑에 자신이 존재함을 표시라도 하려는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모습은 불완전 연소가 많은 상태로 기관을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일 거다.


지금 저 배가 우리 배를 추월하여 이기고는 있지만, 내면에는 그런 약점도 내포한 상태로 결국은 우리 배와 오십보백보의 차이밖에 안 되는 형편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결론을 이렇게 내고 나니, 이미 진다는 말도 우스워지는 심정으로 오늘 하루가 그냥 즐겁게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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