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정원
대량의 산적화물(Bulk Cargo)을 싣고 운항하는 선박은 통상적으로 싣는 항구도 한 곳이고, 내려주는 곳 역시 한 곳으로 정해지는 것이 통례인데 근래에는 기항지를 추가하며 그 예를 벗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금 항차도 싣고 온 석탄(화물)을 두 군데의 항구에서 양하 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선원들 입장에서 볼 때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다.
특히 국내항 간을 찾아다니며 그런 일이 발생할 때, 모처럼의 가족과 만나는 기회가 닿은 것이야 좋지만, 그 시간을 쪼개 내어 항해와 두 항구에 나누어 사용하는 일이 마뜩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가족들도 가족들대로 두 항구와 그 사이의 길거리에다 시간과 돈을 쪼개어서 뿌려주듯 하면서 만나야 하는 일이 역시 힘들고 어려우니 싫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금 항차 광양과 포항 두 군데를 다 기항한다는 예정을 접했을 때부터 이런 싫은 점을 극복해 보려고 첫 번 기항지인 광양으로 찾아온 선원 가족들은 그냥 승선시킨 채 같이 타고 포항까지 가려는 예정을 세워두고 있었다.
내가 처음 배를 타던 시기인 6~70 년대만 같았어도 어림없는 발상이지만, 이제는 가족 동승이 허가된 세월이라 이렇게 결정하고 오히려 그 짧은 동승 항해를 즐기려는 기대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광양 항을 떠나 다음 기항지인 포항까지 가는 동안 화주의 원료 수송팀 직원을 승선교육 차 배승 시키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맨 처음 전화로 문의하여 올 때 5~6명의 인원이 탈 수 있는가를 타진하여 왔기에 2~3명 이상의 승선 인원은 어렵겠다고 일부 거절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가족 같은 친근감으로 대할 수도 없는, 인사를 차려서 손님 접대 식으로 대해야 하는 인원이 5~6명이나 승선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일을 진행하는 데에도 많은 지장이 우려되어 완곡히 거절한 것이라 했지만, 실은 가족들의 동승 항해를 탈없이 이루기 위한 의도도 조금은 있었다.
어쨌거나 배에 승선할 수 있는 최대 탑재 인원은 SOLAS(SAFETY OFLIFE AT SEA, 해상에서의 인명 안전. 주*1.) 협약에 의한 안전 설비 증서에 의해서 강제되고 있다.
우선 구명정에 정해진 탑재 인원이 그 선박의 최대 승선 인원이 되는데, 본선은 30명 승선 정원의 구명정을 갖고 있으므로 현재 승선 중인 선원 23명을 빼면 남은 7명의 인원이 더 탈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7 명중 3 명은 이미 선원으로 지정되어 있고(본선 선원의 정원을 26명으로 지정해 놓고 있었으니.) 나머지 4명만이 기타의 사람 즉 여객 등으로 실제로 더 탈 수 있는 인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 될 경우 선원 가족이 포항까지 타고 갈 수 있는 숫자는 1명뿐이다. 세 가족 방선이지만 아이들도 있을 수 있어 예상되는 가족 숫자는 아무래도 넘칠 것 같아, 광양지점에 전화를 걸어 더 탈 수 있는 7명 모두를 선원 이외의 사람으로 승선할 수 있게 출항 전까지 임시 증서로 허가를 받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무렵 포철직원 두 사람과 문의를 해왔든 본사 영업부의 S과장까지 합친 세 사람이 동승에 참여한다는 연락이 왔으니 네 사람이 배당된 셈이다.
가족이야 자신들의 남편 방에서 거처하면 되겠지만 회사나 포철의 손님은 각자의 방을 따로 챙겨줘서 사용하도록 해줘야 하니, 현재 우리 배 형편으로 쓸 수 있는 예비 방이나 침구 등의 상태가, 아무리 하룻밤 사용이라고는 해도 네 명 이상의 손님을 받기에는 너무 누추한 좀 떨어지는 환경으로 여겨져, 세 명만이 온다는 통보가 어쩌면 잘 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일항사에게 미리 방을 청소도 시켜, 손님이 승선하는 즉시 사용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면서, 구명동의와 개인이 보관하여 갖고 있어야 하는 다른 안전용품은 승선 즉시 직접 지급해 주도록 했다.
주*1 해상 인명 안전 조약(海上人命安全條約,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afety of life at sea, SOLASconvention)
1914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해상 인명 안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최초로 체결된 국제조약. 그 후 기술의 발전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4회에 걸쳐 새로운 조약이 채택되었는데 1974년의 조약(SOLAS1974)이 최신의 것이다. 이 조약은 1981년, 1983년과 1988년에 일부 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