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도선사와의 만남

건강하게 바다 위의 삶에서 졸업을 앞둔 이와의 만남

by 전희태
빅토리아 도선구1.jpg

VICTORIA PILOT STATION에 도착 예정시간(ETA)을 미리 알려 통보 해줘야하는 때마다 계속 1200시로 알려주며 항진 했었는데, 다행히도 예상한 선속을 좋게 유지하여 1145시에 도선 구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런 도착 시간은 이 곳 PUGET SOUND 입항에 최적의 시간이랄 수 있는 환한 주간(晝間)이기에 전 승조원이 피곤하지 않게 입항 준비를 할 수 있어서 편한 기분이다.


오렌지 색깔의 선체를 가진 쾌속의 도선보트가 빅토리아 항구 방파제를 벗어나서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어느새 도선사를 우리 배로 옮겨주려 양선간 사이를 좁히기 시작한다.

배 우현 외판에 파이롯 래더(Pilot Ladder)에 덧 붙여 수직으로 내려준 도선사용 줄사다리(Man Rope)를 붙잡고 올라 온 도선사가 파이롯 래더 위로 안전하게 올라서는 모습을 쌍안경으로 확인하며 조마조마 했던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런 도선사의 승선 과정에서 실족(失足)으로 인해 목숨을 잃던가 크게 다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나기에 도선사를 마중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 있는 3항사나 갑판당직자들은 물론 브리지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 모두가 조심스러운 한바탕의 긴장을 가지곤 한다.


파이롯 레더를 걸어 오르고 갑판 위로 발을 옮겨 딛는 도선사를 다시금 쌍안경으로 자세히 살피니 귀밑머리가 허옇게 센 나이 많은 영감님이다. 미리 대기하고 서 있던 3항사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앞장선 안내에 따라 브리지에 당도한 도선사와 나도 첫인사를 나눈 후 본선의 현 상태를 알려주었다.


엔진의 사용 상태, 선수침로와 타(키)의 사용 여부 등이며, 이 행위는 도선구간에서의 본선 지휘권을 도선사에게 위임 해주는 의미도 되므로, 도선사는 이 때 자기가 알고 싶은 본선의 특성등을 물어 보는 것이다.

드디어 영감님 도선사의 본선 지휘가 시작되어 기관사용을 전속으로 지시하더니 침로(針路)도 새로이 지정 해준다. 배가 정상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슬슬 세상 이야기에 들어서다 보니 영감님은 이 달 18일이면 정년퇴임을 한다는데 45년간 배를 탔단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역시 지금 기관장으로 배에 승선하고 있는 해운 가족임을 자랑삼으며 퇴직 후의 즐겁게 생활 할 예정들을 계속 흥겨운 말씨로 늘어놓는다. 빅토리아 도선구에서 밴쿠버항 대기 투묘지인 일글리쉬베이 까지 항해하는데 걸리는 다섯 시간 동안 그는 퇴직 후의 플랜 설명 등으로 같이 당직에 임하고 있는 나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준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자신의 황금기인 4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바다와 더불어 살아왔다는 그를 위해 코냑 한 병을 기념으로 선물하리라 맘속으로 다짐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잉글리쉬 베이 11번 묘박지(錨泊地)에 본선을 투묘(投錨) 시킨 후, 포트컨트롤에 보고를 끝내면서 그 분은 만족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한다.


도선 보트를 타고 떠나려는 1935년 9월생인 노선장에게, 여생이 항시 즐거운 생활이기를 바란다고 인사하며 선물을 전달할 때 그는 퇴임 후 파티에서 잘 쓰겠다며 고마워했다. 잠시 후 본선 곁을 떠나는 그 작은 배를 향해 두 팔을 휘둘러 한참이나 배웅한 내 마음은? 

빅토리아도선구2.jpg 빅토리아 항(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주의 주도임)에서 밴쿠버B.C 로 가는 해로 길목 첫 번째 대각도 변침을 하는 곳에 위치한 등대. 뒤로 보이는 주거지는 빅토리아 시의 외곽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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