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빨리가라

어떤 이에게는 잡고 싶고 어떤 이는 빨리 보내고 싶은 그 이름, 세월.

by 전희태
DSCF01661.jpg 건널목을 달려 지나는 기차

우리들의 인생에서 어느 때쯤에 도달하면 어떤 사람들은 세월이 너무나 더디 간다는 느낌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일들을 벌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특히, 배를 타고 있는 선원들은 이가정성의 유별난 환경 때문에 가족과의 단절된 생활을 벗어나고픈 염원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을 많이 보이곤 한다.


1997년의 6월이 가려면 아직도 만 하루가 남아있는데 그 날짜의 기다림조차 지겨웠는지 누군가 브리지의 달력에서 6월을 떼어내고 새롭게 다음 달인 7월이 들어선 월력으로 이미 준비해 놓고 있다. 브리지의 항해 당직에 임하고 있는 한 OO군이 해 놓은 일임을 짐작해 본다. 지난번 출항할 때 아쉽게 이별하게 된 애인과 일분일초라도 급한 재회할 수 있는 날짜를 기다리는 게 그만큼 어려운 마음에 달력이라도 당겨 바꾸어주면 빠르게 날짜가 지나가리라 기대해본 행동이었으리라. 그 만큼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바람이 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이, 한 군! 저게 무슨 뜻인 줄 알지?

브리지 당직에 임하려고 올라 온 한 군을 보자마자 이야기를 걸었다.

“그건 하루라도 빨리 무덤으로 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미 그렇게 마음이 꽂힌 한 군은 대답 없이 웃기만 할 뿐, 나와 같은 뜻으로 음미해 볼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이 20대와 쉰 세대의 차이겠지.

090407 059.jpg 소나기가 지나고 햇살이 비치면 늘 다가오던 무지개

아직 많이 남아있어 보이는 앞날이니, 하루 이틀의 별 볼일 없는 듯싶은 날들이야 얼른 지나가야만, 신나고 기분 좋은 날이 퍼뜩 오는 것 아닙니까? 하는 마음의 20대와,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날짜를 아쉬워하다보니 하루라도 빨리 지나쳐가는 날짜는 무조건 아까운 마음으로 애처로워 하는 쉰세대.


이들의 사고(思考) 차이를 애당초 깨우쳐 아는 선지자가 되었던 들, 나 역시 지금에 와서 후회막급한 마음을 가지고 허송세월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럼 다시 한번 계산해 봅시다.

“참 오래 사셨네요?”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당신이 살 수 있는 날짜는?

<365 X 당신의 나이 = 삼만 날?> 이란 걸.


이놈의 날짜 왜 이리 더디 가노?

하루나 이틀 전쯤은 아예 무시하며

이달의 달력을 미리 뜯어내고 있는

여보세요, 당신은 아십니까?

삼만 날 생존이면 “참 오래 사셨네요?”

라고, 인사 들을 수 있다는 걸.


그래 당신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

잠깐 차분하게 계산 좀 해 봅시다.

365 곱하기 당신 나이가

그 동안 살아온 당신의 나날이란 걸.

거기서 당신이 남보다 오래 살 꺼라 쳐도

삼만 날에서 빼기 살아온 나날을 하면

그것이 바로 무덤 갈 때 까지

당신 앞에 남아 있는 나날들이죠.


왜 너무 적어 보입니까?

그래도 당신은 달력을 미리 뜯었잖아요?

인생은 무덤 향해 달리는 무한경쟁

모두들 자신만의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신인들로 릴레이는 이어지나

마지막 혼자 서는 결승점에선

누구나 승자요 패자가 될 수 있는

수레바퀴 속의 유한경쟁이다.


무엇을 그 동안 준비 하였던 간에

끝 풀이가 도래하는 그 날에

남 앞에 펼쳐 보일 당신의 보따리가

가벼이 입가에 미소라도 머금은 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풀을 수 있을까?


당신은 바통을 넘겨주어 작별 인사를 하곤

또 다시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하여간 길을 떠나가야 할 겁니다.

그런 게 인생이니까요.

이제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나를

생각하고 실험하며 보내야 할 나날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확인 받고서도

또다시 달력을 앞당겨 찢어낼 건가요?

오늘이 쌓여 이어지면 그 게 바로 삶인 걸.


어찌 쌓고 이어 갈까 행동하기도 바쁜데

무엇 때문에 오늘을 빨리 가라 하셨는지요?

남들보다 무엇인가 나은 결승파티를 위하여

오늘부터 무엇인가 시작하지 않으시렵니까?


아마도

인생은

눈물이 피-잉 돌도록

서럽지만

가슴을 저미도록

아름다운

저녁노을 같은 거.

황혼이란 바로

오늘의 끝이니까요.


그리고 오늘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3만날 당신 나이 가운데 하루이며

어느새 전부가 되어 버리는 하루이겠지요.

광090411말락카풍 051.jpg 말라카해협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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