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서양 사람들은 13 일과 금요일이 합쳐진, <13일의 금요일>을 매우 기분 나쁜 징크스가 있는 날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감성이 좀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지 13 일의 금요일인 오늘을 보내려 하면서, 찜찜한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 라도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게 뭔데? 하며 무시 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 배는 태평양 건너, 그런 징크스를 잔뜩 가지고 사는 코가 크고 흰 얼굴을 한 사람들이 판치는 곳을 향하고 있으니, 더욱 그런 모양이다.
오늘부터 자그마치 여덟 시간이나 우리나라 시간과 다른 캐나다의 서부 시간(주*1)에 맞추기 위해 이틀에 한번 꼴로 한 시간씩 선내 시간의 당기기를 시작할 참이다.
그러다 보니 누적되는 시차에 따른 피곤함을 염두에 두고, 미리 적응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일도 이제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다.
우려하든 기우와는 달리, 별다른 일도 생기지 않고, 13 일의 금요일도 무사히 지나간다고 생각할 무렵인 저녁 식사 후, E-MAIL을 열어 통신장이 가져다준 뉴스 속보가 눈을 확 뜨게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오늘이 그렇게 기분 나쁜 13 일의 금요일이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제목이다.
<김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이란 뉴스 속보의 타이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위해, 지금까지 만들어 낸 상(賞) 중에서 가장 권위가 있고, 그 상을 탄다는 자체가 바로 명예를 드높이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지만 누구나 탈 수만 있다면 결코 손사래를 칠 수 없는 상중의 상이 노벨상이라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더욱 명예로운 상인 평화상을 탄다는 이야기가 나온 날이 바로 오늘이라니, 13일의 금요일은 아무에게나 나쁜 징크스로 찾아오는 날은 아닌 모양이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다 기쁜 날로 받아 들일만 하니,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쁜 일이 찾아오는 날로 징크스를 바꿔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웃어 본다.
그동안 김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에 관한 이야기는, 심심풀이 땅콩 마냥 꾸준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의 하나였던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줄기차게 나돌던 소문이었다.
그가 전 대통령의 군사 정권을 평화적으로 물러나게 하려는 선거에서, 당시 라이벌이든 김영삼 씨와 양보 없는 대결로, 결국 군 출신인 노태우 씨를 어부지리로 당선되게 만들어 놓았을 때, 왜 자진 후보 사퇴를 하지 않아 그런 일을 발생시켰는가? 하는 비난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유권자들의 정서는 만약 그가 대통령 후보 사퇴라는 용단을 내려, 민간인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시켜 민주적으로 문민정권을 탄생하도록 도왔다면, 그 용단만으로도 그간에 목숨 걸어 군사 독재정권에 항거한 이력에 곁들여, 한반도에 새롭게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만든 장본인으로 기리어져, 노벨 평화상 수상도 바라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당시에 남기면서,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넘어지면 일어서는 부도 옹(不倒翁)처럼 그는 대통령에의 꿈을 버리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전을 계속하여 결국 지난번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결과만을 두고 볼 때 그는 대통령에의 꿈을 접지 않고 계속 이어왔으며, 결국 도전에 성공 하게 되었고, 이제 와서는 노벨 평화상도 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제5공화국을 퇴장시킬 즈음의 유권자들은 문민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하여, 그에게 민간인 출신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이루도록 후보 사퇴라는 용단을 바랐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그의 사퇴는 없던 일이 되었고, 결국 문민 대통령이 당선되지 못했다는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일이, 지금은 우민(愚民)들의 짧은 견해로 판별되는 형국이 된 셈이다.
그렇게 항상 반대편이나 적이 많은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할 일과 갈 길을 잘 지켜내어 이제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국가 사회적으로도 원하는, 노벨상을 최초로 수상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 크게 경하해도 모자람은 없다 할 것이다. 평소 그를 경원시하며 좋지 않은 눈길을 보내던 입장의 사람일지라도 이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는 사실을 좋은 계기로 삼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여길만하다.
하지만 너무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내 고루(古陋)함 때문일까? 그분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구구한 이유를 대며 변명도 했지만,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여 반대되는 행동을 몇 번 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오늘의 결과에 도달한 사실을 전연 무시하기에는 무언가 떨떠름 한 앙금이 남아있는 느낌이 크다.
성공을 위해서는 넘어져도 또 일어나는 부도옹 같은 모습이야 필요한 거겠지만, 원하는 결과만을 위해 정도에 벗어나는 무리수를 두어도 눈 감아 주는 풍조가 팽배한 그런 형편이라면 과연 바람직한 사회상일까?
나의 노파심은, 자신이 튀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불이익이나 불편을 줘도 괜찮다는, 너무나 이기적인 사색과 행동이 판치는 세상은 결코 정도(正道)가 아니므로, 취해서는 안 될 길이라고 뻗대 보고 싶음이 그렇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13일의 금요일 저녁.
한 시간을 전진시키는 선내 시간으로 그만큼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땅 위보다는 물 위에 더 오래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뱃사람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본 오늘을 생각해 보는 세상살이 이야기이다.
주*1 : 캐나다 서부와 우리나라 간 지방 표준시는 숫자상으론 10시간 차이가 나지만, -즉 동진으로 항해 중 열 시간을 도착할 때까지 나눠서 당겨주지만, 중간에 날짜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를 중복으로 사용하므로, (1일이 지나도 다시 1일로 사용)-양 지역 간의 시간차는, 날짜의 숫자를 선후로 기준하면, 14시간을 서반부에서 앞서가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서진으로 올 때에도 10시간을 되풀이해서 사용하지만, 역시 날짜변경선에서 하루를 건너뛰므로(1일이 3일이 되는 식) 역시 동반구의 우리나라가 캐나다 보다 역시 14시간 늦은 시간을 쓰는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