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내 맘 같지 않은 절수

돈을 물쓰듯한다는 표현이 맞는 말일까?

by 전희태
C72(3078)1.jpg 눈이 살짝 내려진 갑판 위의 모습


뿌옇게 밝아오는 창밖을 내다본다.

우려했던 바람이나 파도가 크게 일지 않은 바다 위로 싸늘한 한기를 품은 달빛이 허공 중에 숨겨진 이지러지기 시작하는 새벽달로부터 빠져나와서, 갑판 위에 흩뿌려져 있는 흰 눈의 잔해를 더욱 싸늘하니 추위에 떨게 해준다. 새벽녘에 바람이 좀 불며 씽씽 거리는 소리를 내었을 때, 지나가던 작은 저기압이 흩뿌려 주었던 눈이 녹지 못하고 추위에 그냥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구름은 끼어 있지만, 그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푸른 하늘의 속살을 내비치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는 속을 253도의 코스로 캄차카 반도의 남쪽 끝머리 부근인, 북위 52도 동경 160도 선의 다음 변침점을 향하여 배는 열심히 달리고 있다. 저녁 아니 내일 이른 새벽이 되면 그곳에 도착하여 다시 223도의 침로로 변침 하며 쿠릴열도를 오른쪽으로 두는 남행이 시작될 것이다.


기분으로 야 집에 다 온 것 같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도착까지 여드레는 충분히 남아 있기에 혹시 그 안에 보일러라 든가 하여간 청수를 대량으로 사용해야 하는 기기에 이상이라도 발생하면 물이 떨어져서 곤란한 일을 당할 수도 있기에 물을 아끼는 캠페인은 계속해서 지속시키고 있다.


나는 모범적인 절수 케이스로 소변을 보고 난 후에 후러싱(물 내리는 일)을 매 사용 때마다 하지 않고 몇 번 모아서 시도하려고 사용 후 변기 뚜껑만 닫아주고 있다.

내 혼자 쓰는 화장실이지만, 그런 일을 실시하고 있는 상태에서 변기 뚜껑을 들면, 소변 특유의 톡 쏘는 지린내가 코에 확 끼쳐 들어온다.

아무리 내 소변 냄새이긴 해도 역시 소변의 역한 냄새는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기왕에 시도한 일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숨을 조심스럽게 들여 쉬면서 다시 소변 보태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에 계속해서 절수가 요구되어 변기에 사용하는 물을 재탕삼탕 기다렸다가 사용하게 될 경우, 너무 냄새와 위생상태의 악화가 우려될 수도 있다. 그런 때를 때를 대비하여 아예 해수를 받아 두었다가 용변 후 부어주는 방법도 사용하지만, 사실 이런 경우 청수를 사용하는 파이프 라인을 녹슬기 쉽게 해수로 오염시키는 형편도 되므로 매우 조심성이 요구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물을 아끼는 일을 솔선수범 차원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승조원은 물을 아끼는 일에 별로 숙달되지 못했다 고나 할 까? 아니면 설마 단수되는 일이 진짜로 발생할까? 믿지 못하며 행동하는 게 눈에 보이니... 하여간 내 맘 같지가 않다.


어제는 브리지의 앞 창문에 바람이 날라다 뿌려준 해수 스프레이가 많이 붙어서 뿌옇게 소금기가 붙은 창의 유리를 닦아 낸다고 청수 발브를 열어주어 씻어 내리는 일을 당직 조타수가 행하는 걸 보았다.

지금은 절수의 비상사태가 발생한 시점이라 생각하고 물을 아끼는 모든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자고 어제 그렇게 열심히 모두를 불러 모은 자리에서 이야기 한 내 의도를 무색하게 만들어 준 일이다.


이렇게 내 말을 잔소리로 듣게 끔 일을 만든 장본인은, 중국 연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 청년으로 인력 수출을 나와 우리 배에 타고 있는 선원이다. 아직 바다 가운데에서 물이 모자란다는 일이 어떤 뜻인지를 모르는 형편이라 여겨 저 길게 말을 보태지 않고, 앞으로 어떤 배에서든 절수를 시행하려 할 때는 평소에 쓰던 식으로 물을 사용하지 말도록 한번 더 강조해주고 끝내었다.


<돈을 물쓰듯한다.>는 말은 낭비의 표본일까 아니면 그냥 생각 없이 마구 사용해도 별 탈 없는 일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일까?

문득 물 쓰기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는 일은 이제 우리들의 언어생활에서 사라져 버리는 옛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의 물꼬가 머무르려는 곳이 그렇다.


비록 그곳이 지구 상 물의 거의 모두가 모인 바다의 한가운데라 할 지라도 물을 아껴 써야 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로 우리들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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