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현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을 또 당기어 이제 우리나라와는 두 시간의 차가 있는 시간대에 들어섰다.
며칠 전부터 마음 단단히 각오를 다지며 저기압과 조우될 때를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닥쳐진 상황에서는 최고로 좋은 방향인 파도와 바람을 만나되 뒤바람/뒤 파도로 황천 조우의 어려움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을 흐뭇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해주시는 신의 섭리에 감사드릴 뿐이다.
빠르게 커지면서 또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달려오기에 걱정을 더욱 앞서게 만들었던 저기압이지만, 그런 속에서도 우리와 지나치는 시간의 완급을 조정해주듯 자신의 속력을 잠시 늦추기도 하며, 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끔 우리 더러 속력조차 내게끔 밀어주는 뒤바람으로 계속 한나절 동안이나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조화가 아니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는 동해 바다이지만 역시 아주 빠른 속력으로 그곳을 빠져나와 우리의 갈 길에 스쳐 지날 예정을 가진 또 다른 저기압의 모습을 보면서 그 저기압 역시 우리에게 뒤바람의 기쁨을 맛보게 하며 단숨에 베링해로 향하려는 몸짓을 보여주니 역시 믿음에 보탬을 주는 것이다.
떨어질 만큼 떨어졌던 기압도 다시 반등세로 돌아서서 천천히 오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저기압으로 오밀조밀하게 그려진 등압선 동그라미의 외곽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해준다.
비록 바람의 방향이 앞쪽으로 변하여 가기는 하지만 아직도 빠르게 멀어지는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30 knots의 속력으로 베링해를 달려 올라가는 저기압의 몸체 때문에 폭풍의 범위에서 그만큼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모든 것이 곧 평상심을 되찾아 바람이 크게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한 번씩 휘몰아쳐 오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바람의 고약한(?) 음색도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고, 나에게 보다 절실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소리는 배의 주기관이 만들어 주는 역동적이지만 조용히 돌아가며 내주는 박동의 전달음이다. 마치 우리 몸의 건강한 맥박 인양 일정한 리듬을 갖고 발바닥을 통해 온몸에 전달되어 올 때 느끼는 뿌듯함은 모든 소리를 제압하며 우리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열 이레 둥근 달빛이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 위에 싸늘하니 부서지면서, 인정머리 없는 차디 찬 보석 가루를 흩뿌려 주고 있다.
시베리아가 가까워 지기 때문이겠지... 새벽 한 시 반의 이 시간. 굉장히 추운 한기가 예기치 못하게 찾아와 몸을 오싹하니 떨게 만든다.
몸을 좀 녹이려고 방으로 돌아와 난방 히터의 환풍구에 손을 대어보니 미지근한 바람만이 나오고 있어 몸을 데워주기를 포기하게 해준다.
침대를 찾아 누웠지만 발가락이 싸늘하니 식어 얼얼한 느낌이 들며 너무나 추워 도저히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다. 주섬주섬 겉옷을 다시 꿰어 입고 목욕탕을 찾아든다. 따끈한 온수를 한대야 가득 받아 놓고 발을 담가준다.
생각보다는 좀 뜨거운 느낌이 드는 것을 참으며 발을 계속 푹 담그고 있으니 따뜻하니 아픈 감각이 발가락에서부터 타고 올라 온몸으로 퍼져가며 사정없이 덤벼들던 한기를 내몰아 준다.
어제 남겨졌던 청수량에서 17톤을 사용한 결과가 나왔다. 조수기로 만든 일당 9톤이 더해져서 남겨진 물이 그 양이므로 실제 소비량은 28톤인 셈이다.
역시 절수하려는 첫날이면 보여주던, 무모한 청수 소모량 증가라는, 관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직까지는 절수를 위한 단수조치 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속내로는 판단하지만, 예정했던 대로 내일과 모레에는 다시 소모량을 점검해주는 긴장의 끈 만큼은 놓지 말아야 될 것 같다.